깊어가는 가을날, 또 하나의 뜻깊은 음악회에 갈 일이 생겼다.
지인의 부탁으로 본인과 친분이 두터운 가수 한 분을 콘서트에 추천한 관계로 참석하게 되었다. 나름대로 소중하지 않고 의미 없는 음악회가 어디 있을까마는 공연장 입구에 들어서며 다른 음악회와는 다른 특별함을 알 수 있었다. 입구에 전시되어 있는 사진들, 각종 자료와 작품들에서 범상치 않음을 느꼈다.
이 음악회는 1990년대 말에 발달장애 자녀를 둔 엄마들의 기도모임에서 시작하여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해 설립된 ‘기쁨터’에서 주최하여 자활기금 마련을 위해 15년째 계속되는 ‘Joy콘서트’였다.
‘기쁨터’ 공동체는 성인 발달장애인이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지도와 보호를 받으며 공동생활을 하는 소규모 거주 시설로, 종교 활동, 힐링 센터, 지역사회 적응훈련, 동아리 활동, 제과제빵과 같은 작업교육 등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있다고 한다.
음악회가 시작되고 약 두 시간 반 넘게 격조 있는 클래식 연주와 흥겹고 감동 있는 대중음악이 연주되었다. 대중들이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 가수가 다수 출연하여 좋은 무대를 선사했다. 알고 보니 취지에 동참하여 단지 이 연주회를 위해 유럽에서 전날 귀국한 연주자도 있었고, 사회자는 10년 넘게 자원봉사, 가수들은 모두가 바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재능 기부로 기쁘게 무대에 섰다고 한다. 이런 연주와 노래가 너무 좋았지만 무엇보다 가슴에 울림을 주는 감동적인 순서는 장애인들과 그들의 부모들로 구성된 ‘가족 합창단’의 노래였다.
훌륭하지는 않았어도 사랑하는 여러 가족의 메아리치는 화음은 청중들로 하여금 커다란 감동과 메시지를 느끼도록 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리고 서로 손을 꼬~옥 잡은 그들의 표정은 너무도 진지하고 눈빛은 무척이나 빛났다.
이런 화음을 만들기 위해 가족들이 함께할 수 있었던 연습 시간조차도 행복했을 것임이 분명했다.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는 일반적인 바람이 있다. 자녀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 달라는 소망이란다. 그러나 그 소망이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곱지 않은 시선으로 외로운 삶을 지탱해 오는 것이 현실이다.
장애인의 숫자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도 주변에서 장애인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집 밖에 나서지를 않아서일 것이다.
건전한 사회라면 이런 장애인들이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그들의 자립을 위해 부모들이 뭉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자녀들을 돌봐야 하는 것은 그들의 부모님들만의 몫이 아니라 이 사회의 몫이다.
그러나 부모는 자녀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뚜렷한 대책을 발견할 수 없다.
부모들은 생전에 장애 자녀의 삶을 책임져야 하고, 자신들이 세상을 떠난 후 자녀들의 대책까지 마련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4월 18일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여 ‘돋움 공동체’의 후원으로 본인이 활동하고 있는 밴드의 연주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 본인이 진료와 후원을 하고 있는 중증 장애인 시설 두 곳의 원생들을 초대했었다. ‘세월호’ 사고 직후라 취소도 고려했지만 벼르고 벼르던 그들의 서울 나들이를 망칠 수 없어 예정대로 진행하게 되었다. 몸이 불편해 이동이 어려워 모두 다 오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흥겨워하는 모습을 보며 큰 보람을 느꼈다.
이런 즐거운 자리를 자주 접할 수 있게 해 주면 좋겠지만 중증 장애 원생들이 이동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두 시설에도 불편하고 힘들지만 헌신하시는 원장님과 많은 선생님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원생들이 오손도손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세상과 단절된 듯한 공간이지만 그들이 생활할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인 것이다.
오래전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의 어느 커다란 몰(mall)의 푸드코트(food court)에서 본 광경이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멀리서 느릿한 동작으로 흰 셔츠와 빨간 넥타이 차림의 한 무리의 청년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다운증후군으로 보이는 그들이 테이블과 바닥을 청소하며 일하는 모습이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 없었다.
식사 중인 많은 사람들의 어떠한 이상한 시선도 술렁임도 없이 늘 그랬던 듯 말이다.
우리 같았으면 어떤 상황이었을까 궁금해진다.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도 필요하지만 국민들의 가슴이 좀 더 따뜻해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호진 양평 영진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