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영화계에 또 새로운 기록이 탄생하고 있다고 한다.
1300만 관객을 돌파하고 우리나라 최고 기록인 외화 ‘아바타’를 뛰어넘을 것이라는 기대도 예상하고 있다.
개봉하고 얼마 안 되어 아내와 보았는데 관람객이 만원은 아니었고 꽤 열기가 느껴졌지만 이렇게까지 흥행할 줄은 몰랐다.
우리 세대는 직접 겪어 보진 않았으나 부모님 세대로부터 생생하게 듣고 자랐던 터라 낯설지 않은 내용과 어릴 때 직접 봤던 배경 화면도 간간이 나와 시선을 끌었다.
나이가 지긋한 주변의 관객들은 그런 장면들에 감회가 어리는 듯 일행들과 소곤소곤 과거의 경험과 목격담을 주고받기 바빠 보였다.
우리 부부도 예외 없이 기억을 돌이키는 데 여념이 없었다. 사실 뻔한 내용도 많은데 반가워서 웃음이 나오고 슬픈 마음에 안타까운 탄성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일까? 아마도 지난날의 우리의 모습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동안 비슷한 시대 배경으로 만든 영화나 드라마는 많았지만 이런 공감을 느낀 적은 없지 않았나 싶다.
필자는 영화에 대해서 문외한이고 결코 이 영화를 예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예술성을 떠나 삶의 고단함을 잠시 잊고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해 보는 것도 정신건강에 손해되진 아닐 듯해서 하는 얘기일 뿐이다.
묵직한 주제나 어려운 영화보다 공감하고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영화가 흥행하는 이유는 요즘 우리의 생활이 너무 피곤하기 때문 아닌가 생각된다.
이후 얼마 뒤에 가족과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에 가게 되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먼 길을 달려 자갈치 시장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상점을 구경할 수 있는 ‘문화탐방’까지 하게 되었다.
부산이 생소한 우리 가족은 무척 궁금했던 터라 신기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엄청 몰려 있었다. 우리는 인파를 뚫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그 유명한 ‘꽃분이네’ 가게를 찾을 수 있었다. 기념사진 촬영에 정신없는 방문객들이 시장 길을 메울 정도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었고, 멀리서 구경 온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우리는 먼발치에서 잠시 눈도장을 찍고는 길을 재촉했다.
나중에 안 얘기지만 ‘꽃분이네’ 가게에 관광객이 몰려드는 것이 장사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고 게다가 안타깝게도 다른 이유로 존폐 위기까지 왔다고 한다.
어쨌든 한 시간 남짓 운전해서 가는 동안 한국의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잠시 다녀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해운대 소재의 한 호텔이었다. 가는 동안 새로 생긴 다리를 지나며 이미 바다를 감상했지만 무려 17~18년 만에 바라본 해운대의 겨울 바다는 역시 멋졌다.
해안을 정비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라 다소 아쉬웠지만 청량한 바다 내음은 그대로였다.
결혼식 시간이 가까워지자 친구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상 못 한 친구들과 정말 오랜만의 만남에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결혼식을 마치고 더욱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술자리가 이어졌다.
부산에 개원한 친구의 안내로 지금껏 먹어 본 적 없는 맛 집에서 술잔을 주고받았다.
진료실 얘기 말고도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가 너무나 많이 쏟아져 나왔다.
가족이나 건강, 세상일에 대한 많은 얘기들을 나눴으나 그중 무엇보다 힘들었던 대학 시절의 추억이 단연 화제였다.
친구들과 세상 얘기를 하며 함께 나누었던 소주 한잔도 즐거운 시절이었던 것이다. 몰랐던 이야기도 기억나는 이야기도 모든 게 아련한 향수였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젊은 시절 함께한 친구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우리만의 지난 시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동행한 여러 가족을 위해 야경이 아름다운 곳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을 이어 갔다.
그러고 보니 이곳 또한 영화 ‘해운대’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 아닌가?
공교롭게도 ‘국제시장’과 ‘해운대’는 같은 감독이 만든 영화이고 말이다.
멀리서 바라보며 저기쯤이 그 장면에 나왔고, 배우 누가 뭘 하던 곳이니 하며 또 한 번의 재미있는 얘깃거리가 되었다.
이렇듯 시간이 많이 지났어도 기억나는 걸 보면 영화나 드라마의 효과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추억을 먹고 산다’라는 말이 있는데 가끔은 우리의 지난 모습을 돌아보며 아쉬움과 자부심을 느끼는 것도 필요할 듯싶다.
스무 살 청년들이 중년이 되어 아내와 장성한 자식들과 한자리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추억과 술잔을 나누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또 하나의 멋진 추억까지 만들면서 말이다. 해운대의 밤은 그렇게 깊어 가고 있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호진 양평 영진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