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 등록 2015.10.20 09:5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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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y Essay 제2068번째

소설가 데이빗 실즈의, 에세이인지 인문학인지 서점에서 어느 책꽂이에 꽂아야할지 고민했을 법한 책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신기한 책이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그 말은 귀납적으로 99.9% 정도 맞다고 할 수 있을 ‘과학적 사실’이다. 그런 누구나 이해하는 주제를 아무나 알 수 없을 잡다하고 구체적인 통계와 일화들로 설명해 놓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명백히 작가의 100세를 바라보는 아버지를 위해 씌어졌다. 그렇다고 노쇠해가는 아버지를 위한 신파극 같은 이야기도 아니고 오히려 작가의 아버지는 심할 정도로 건강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프롤로그 말미에 적힌 말을 보면 작가가 집필한 심정이 약간은 엿 보인다. : “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있나보다. 그래서 이렇게 죽음에 관한 자료를 쏟아 부어 아버지를 매장하려나보다. (…)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나는 아버지를 미워하며, 아버지가 영원히 살았으면 좋겠고, 아버지가 내일 당장 죽었으면 좋겠다.”
 
책은 유년기와 아동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와 죽음 - 이렇게 순서대로 4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시기에 대하여 나열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죽음에 관한 책답게 첫 장을 시작하는 소제목은 ‘태어난 순간 죽음은 시작된다’이다. 이후 글은 작가와 아버지에 관한 일화에 틈틈이 적절히 통계, 과학적 사실들과 유명인이 남긴 말들을 배치해 놓는다. |

가장 공감되는 내용들이 있던 장은 3장 중년기인데, 30대부터 서술되어 있긴 하지만 하필 중년기에 가장 공감되다니 이젠 정말 빼도 박도 못할 중년이 맞나보다. 공감된 몇 부분을 옮겨보겠다.

“에머슨은 말했다. ‘30세가 넘은 뒤 죽는 날까지는 대여섯 번쯤 예외가 있을 뿐 거의 매일 아침에 눈 뜰 때마다 슬프다.’”

“31세에 톨스토이는 말했다. ‘우리 나이가 되고서, 머리를 굴려 이해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존재와 삶 자체를 통해서 불현듯 이제는 즐거움을 추구하기가 힘들고 또한 헛되다는 것을 깨치는 순간, 모색과 번민과 자신에 대한 불만족과 한탄 같은 젊음의 특징들은 이제 적절하지 않고 소용도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1907년, 36세이던 프랑스 작가 폴 레오토는 말했다. ‘어느 날 누가 물었다. 요즘 뭐 하고 지냅니까? 나는 대답했다. 나이 먹느라 바쁩니다.’”

작가 아버지의 일화 부분들은 책 내용의 절반을 차지하지만 대체로 (적어도 내게는) ‘그래서 뭐? 일기는 일기장에…’ 라고 말해 주고픈 심심한 이야기들이었다. 다만 그 이야기들은 또한 대체로 이 전체 흐름에 상반되게 ‘일반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버지는 90대가 되도록 이토록 젊은이 같고 건강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럼 이 책의 숨은 주제는 바로 ‘아빠 자랑’인가? 맞는 거 같다. 그리고 또 하나, 늙음에 대한 애증도 주제에 포함되는 듯하다.

내가 늙어가고 있구나…라는 걸 치기어린 겉말이 아닌 실제 속내로 이야기하기 시작한 게 20대 중후반쯤이었는데, 그 때 나보다 세 살 쯤 더 늙은이와 한강고수부지에서 맥주에 육포를 뜯다가 내뱉은 그 말에 늙은이가 말하길, 자긴 늙어가는 게 너무 좋다고, 더 깊어지는 것이 좋다는 거다. 얼굴을 뜯어봐도 농담하는 게 아니어서 신선한 충격과 함께 내 생각을 뒤바꾼 한마디였다. (어떤 사람은 기억도 못할 한마디가 내 사고 체계에 큰 전환을 준 일이 나는 꽤 있는데, 생각해보면 나도 말조심 해야겠구나 싶다.) 그렇다고 지금은 늙는다는 게 외모를 제외하더라도 마냥 좋지만은 않은 게, 직업 탓도 있겠지만 고지식해진 나 자신을 발견할 때 그렇다. 어차피 늙을 거, 조금이라도 멋지게 잘 늙겠다면 늙음의 정보집인 이 책을 지피지기 삼아 읽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이선희 부산대치과병원 구강내과 전공의

이선희 부산대 전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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