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4학년 2학기를 보내고 있을 무렵,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님이 학교에 오셔서 강연을 하셨다. 강연 내용은 그의 영웅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에 대한 이야기였고, 니스코 카잔차키스의 행적을 좇은 그리스 여행을 통해 느낀 바를 2시간 동안 들려주셨다. 왜 몇 년을 보내면서 그런 여행을 했는가라는 누군가의 물음에 원장님은, 그가 쓴 글을 보고 운명처럼 빠져 들었고, 이름만 들어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양 설레며, 그의 출판된 모든 책과 출판되지 않은 엽서나 짧은 편지도 구해 볼 만큼 빠져 있어, 처음에는 10년을 계획하고 그의 행적을 좇기로 결심했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나에게도 저렇게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사람이 있는지 되짚어 보게 되었는데, 그때 떠오른 사람이 김연아이다.
2009년, 한창 deet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 나는 김연아라는, 경기도 고양시가 고향인 한 스케이터를 알게 되었다. 내가 가장 처음 본 작품은 2008~2009년 시즌의 쇼트프로그램Camille Saint-Saens의 죽음의 무도(Danse Macabre)이다. 그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의 강렬함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음악의 선율과 템포에 모든 트랜지션이 일치하고, 점프의 도약과 착지도 음악과 절묘하게 들어맞으며, 표정과 손짓 하나까지 모두 죽음의 무도를 표현하고 있는 2분 40초 동안의 강렬함!! 곧 나는 승냥이(김연아팬을 이르는 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매년 11월~3월 피겨시즌에는 늘 김연아와 함께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뽑은 김연아 베스트는 김연아 자체가 피아노 선율이었던 2009~2010 프리 스케이팅 프로그램인 George Gershwin의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와 스텝시퀀스가 예술인 2012~13시즌 프리 스케이팅 프로그램인 레미제라블이다.
많이 알려진 대로 김연아는 불모지 같은 한국 피겨계에서 홀홀 단신으로 우뚝 선 입지적인 인물이다. 피겨 전용 빙상장이 단 하나도 없는 우리나라에서 빙질이 전혀 다른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트 빙상장에서 연습을 해, 뛰어난 기술과 표현력을 갖추었음에도 고질적인 부상이 대회마다 발목을 잡아 2007~2008년도 시즌까지, 등에 파스를 도배하고서 경기를 뛰어야 했다. 그리고 2008~2009 시즌, 김연아가 처음 부상 없이 뛴 시니어 시즌에서 당당히 세계선수권 우승을 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해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피겨스케이팅 금메달이라는 경이적인 역사를 새로 쓰게 된다. 해외 유명 언론들은 부상 없는 김연아는 천하무적이라고 말한다. 교과서 같은 기술, 음악과 하나 되는 표현력, 온 나라 국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짊어지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초연한 정신력, 이 세 가지는 김연아를 피겨계의 전설로 남게 했다.
내 주변 사람들은 묻는다. 왜 김연아가 그렇게 좋으냐고. 나는 그녀의 근성을 사랑한다. 스케이트화가 발목을 잡고, 부상으로 몸이 말을 듣지 않을 때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녀의 근성을 닮고 싶다. 그리고 완벽함이 무엇인지 실제로 보여주는 그녀의 프로그램을 보는 것 만으로 가슴이 뜨거워진다. 나도 내 분야에서 열정과 자신감을 가진 치과의사가 되고 싶다. 그녀는 나에게 그런 의미이다.
구혜진 부산대치과병원 보존과 전공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