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의 가치: 현재와 미래, 학생과 선생

2021.05.12 14:52:31

시론

4차 산업시대와 시대적/환경적 변화 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의 변화에 의해 따라 직업군의 재편성과 교육의 내용 혹은 방식 그리고 그 중요성이나 가치 기준 또한 바뀌고 있다.


이런 변화는 과거의 변화와 비교하여 상당히 급변하고 있으며 때로는 교육의 기본 형태를 바꾸고 있고 이는 코로나 판데믹 상황이나 학령인구의 감소에 따른 결과만은 아니다.


‘라떼’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 기성세대의 조그만 생활방식처럼 요구되고 있지만 이런 변화의 종단면을 보기 위해 과거를 돌이켜보지 않을수 없다.


과거에는 정규 학습기관인 학교에 들어가서야 영어를 배웠지만, 지금은 미취학 아동들이 영어를 배우고 초등학교 학생들이 “코딩”의 기초를 접하는 그런 시대적 변화와 함께 하고 있다. 동영상은 물론 온라인에 존재하는 무수한 교재를 사용할 수 있고 홈스쿨링을 비롯한 교육 장소의 파괴까지 기현상이 아닌 사회 전반에 펼쳐져 있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아야하는 상황이다.


선생님에서 선생이라는 의미는 먼저 생을 살아온 사람이 그 경험과 학습을 바탕으로 후에 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선생이라 불리우고 때로는(?) 존경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당연히 붙는 존경의 의미를 담은 한 글자가 “님”이었다.


그러나 현 시대는 그렇게 과거로부터 불러오던 직종 명칭이나 존경의 의미를 담은 한 글자의 의미가 많이 바뀌고 퇴색되고 있음을 직시하여야 하는 시기이다. 대학의 경우 교수평가제도가 운영되고 있고 그 결과는 수치화된 것과 서술형 표현까지 존재한다. 지금 학생들은 과거의 학생과는 달리 교육 공급자를 선생으로 보지 않고 직업의 한 군으로 보고 그 자격과 자질에 대해서도 평가를 한다. 예를 들어, 이 교수는 이 과목을 강의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 애초부터 어떻게 대학의 교수진이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현까지도 나타내는 것이 현실이다. 안타까운 평가제도이면서 안타까운 표현 결과물들이지만, 그러나 적시해야 할 것은 교수나 선생님은 이제 선생자로서의 어떤 우월성을 담보하지도 않거니와 절대적인 존경의 대상은 절대적으로 아니라는 것이다.


판데믹 시대에 백신의 국산화가 미비한 점을 두고 주입식 교육의 문제라는 기사 제목이 오늘 필자의 눈에 들어왔다. 당연히 교육은 양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맞고 수요자 중심의 교육컨텐츠가 제공되어야 하는 것이지, 교수자가 원하는 내용을 전달하는 것을 가르침과 배움의 기본 구조로 선생을 중심축으로 생각하는 것은 시대착오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병원이 환자 중심병원을 추구하듯이 학교는 학생중심 교육기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기성세대로서 과거에 학습하고 과거의 학습내용을 바탕으로 현재를 이끄는 것이 과연 얼마나 효율적일지 심각하게 재고하여 볼 필요가 있다.


보통의 아들들이 다(대부분) 그러하듯 중고등학교때 몰래몰래 하던 게임이나 독서실 대신 드나든 피씨방 출입을 막았던 것이 과연 늘/모두에게 옳기만 한 일인가 되돌아보게 되었다. “페이커”라는 프로게이머의 탄생을 예상하지 못하고 프로게이머의 직종을 이해하지 못한 세대로서는 지나간 사소한 일일 뿐일수도 있지만, 컴퓨터와 친하고 게임을 즐기는 것을 스스로를 계발하는 단계로 혹은 지나쳐가는 단계로 지켜보고 나무라지 않았다면 그들중의 일부는 페이커2가 되고 “무릎”이 되고 e스포츠 및 게임 관련산업으로 직업적 연계가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그 중 일부는 국내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실력자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제 선생은 선생자로서 내가 먼저 배워 알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한 선경험만을 학습 내용으로 전달하기는 어려운 시대이다. 선생자는 후생을 알 수 없기에 급변하는 현생에서 후생님들에게 판단의 착오를 줄 수 있는 라떼의 해로움을 인지하고, 선택의 기회를 줄이거나 심지어 피해를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 바른 선생의 자세일 것이다. 이를 통해 더 가치있는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고 모자라는 현생의 경험이지만 “님”의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가장 최근의 변화를 온몸과 머리로 느껴온 후생을 사는 그들이 때로는 선생들에게 선생님의 역할자가 될 수도 있음을 마음으로 인정하여야만 바른 교육이 진행되고 이 교육이 효율적이고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 이런 점은 학교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고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비슷하게 고려하여야 할 부분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현철 부산대 치의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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