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에 대하여

2021.05.18 11:52:44

스펙트럼

얼마 전에 여수에 다녀왔습니다. 몰아쳤던 구강조직학, 생화학, 치아형태학, 전반적인 생물학, 치과재료학 등 본과 1학년의 첫 중간고사를 우당탕탕 마쳤습니다. 바로 다음날, 며칠간의 밤샘이었지만 피곤한지도 모르고 새벽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여수 돌섬의 한 카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지만 목욕을 한 듯이 새로워진 느낌이랄까요? 꽉 차서 답답했던 가슴 속이 확 비워지는 듯한 느낌에 상쾌함까지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고 2주가 지났는데도 어째서인지 그 카페에서 느꼈던 감정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그날의 휴식이 이렇게나 여운이 남기에 글로 남겨보고자 합니다.

 

먼저, 휴식에 대한 제 경험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 고작 26살에 불과하지만, 이때까지 숨가쁘게 달려왔습니다.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뛰어난 친구들 사이에서 뒤쳐지지 않으랴 애썼고, 현역으로 서울대학교에 진학해서는 나름대로의 목표를 이루고자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복수전공에 동아리회장, 인턴 경험에 학술대회 참여까지... 방학 때는 글로벌한 시야를 넓히고자 여행도 빠짐없이 다녔습니다. 알차고 주체적인 제 모습이 멋있어 보였고, 주변 사람들도 그런 저를 대단하다고 치켜 세워주었습니다. 제 인생이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휴학을 하게 되었고, 아무 계획이 없이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계획 없는 큰 시간이 생긴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고작 휴학 1번에 불과하지만 계획이 틀어지고 뒤쳐진다는 생각에 스트레스가 상당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막연히 떠났던 휴양지의 해변에서 ‘인생휴식’을 경험했습니다. 해변에 앉아 아무 목적이 없이 휴양을 즐기는 사람들과 바다를 보는데 그저 평안하고 행복했습니다. 한마디의 대화도 없었고 오롯이 저만의 시간에 온전한 차분함을 느꼈습니다.

 

아주 차분하면서도 동시에 마음이 가벼워지고 행복감으로 물드는 느낌! 그러다 문득 이때까지 쉬는 법을 몰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게 최고의 휴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을 때의 휴식의 힘은 더욱 컸습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신기하게도 걱정이 사라지고, 답답한 마음은 시원하게 뚫리고, 발걸음은 가벼워졌습니다. 걱정과 의심, 예민함으로 가득 찼던 모습은 없어지고 생기를 찾은 모습이었습니다. 아직도 그때 느꼈던 감정이 남아서 지치고 긴장될 때 마음을 편하게 해줍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여수에서 오랜만에 다시 느꼈습니다. 온전한 평온함이 새로운 힘을 주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요! 신기한 일입니다. 카페에 앉아있는 2시간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들어갈 때 저와 나올 때의 저는 다른 사람 같다고 느꼈으니까요. 이제는 확실히 알겠습니다. 휴식은 즐거운 것으로 채우는 것보다 나쁜 마음을 버려낼 때 그 힘이 더 크다는 것을요.

 

휴식은 중요하다고들 합니다. 인터넷에 ‘휴식’을 검색하면 ‘올바른 휴식법’ 등의 결과들이 쏟아집니다. EBS 다큐프라임에서는 ‘휴식의 기술’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까지 촬영했습니다. 예전의 저였다면 ‘쉬는 것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니, 참 피곤하게 산다’ 라며 넘겼을텐데 ‘휴식의 힘’을 느껴보니 휴식에도 기술이 있다는 말에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휴식이란 삶에 대한 열정을 다시 불태우는 것이다’ 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제는 그 문구가 상투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나의 그릇이 가득 찼을 때 그것을 비워주는 것이 휴식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깨끗하게 비우고 나니 더 많은 것들을 담고 싶은 활기찬 마음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봄이 본격적으로 다가온 5월입니다. 유난히 맑은 햇살에 연한 잎사귀들이 반짝이는 계절입니다. 이렇게 휴식하기 좋은 계절이 또 있을까요? 이 글을 보시는 선생님들께서도 이 반짝임과 따스함 충분히 즐기시고 보다 더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예슬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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