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진료실과 학생 교육

2021.05.24 09:56:05

Relay Essay 제2449번째

학생 진료실 담당으로 본교에 재직하게 된 지도 어느덧 3년이 되어간다. 15년 만에 돌아온 모교의 학생 진료실은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었다. 학생 진료실을 사용하는 학생과 교수자뿐만 아니라 학생 진료실에 내원하는 환자들도 변화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15년 전 학생 진료실 환자는 일반 진료를 위해 내원한 환자가 대부분이었다. 병원에 내원한 일반 환자에게 전체 치료계획 중 학생 수준에 적합한 치료에 한하여 학생 진료실에서 진료를 받으시는 것에 대하여 설명하면 미래의 치과의사를 만든다는 사명감으로 학생 진료에 동의해주시는 경우가 많았다. 그 덕분에 졸업하기 전까지 임상 실습 최소증례를 채우는 것은 병원에서 하는 실습을 충실히 한다면 어렵지 않은 과제였다.

 

치주과를 전공으로 선택하게 된 계기 역시, 학생 진료실에서 치주 환자를 치료했었던 경험 덕분이다. 30명 이상의 심한 치주질환 환자의 비수술적 치료를 학생 진료실에서 하면서, 잇몸의 염증이 완화되어가는 과정을 직접 보고 배웠다. 이후 내가 치료한 환자를 치주과에 모시고 가서 전공의 선생님이 집도하는 치주 판막 수술을 보조하면서 수술적 치료의 예후를 관찰하였다. 이러한 장기간의 치주치료 과정 중 환자와의 소통하고 신뢰도를 쌓아가는 과정은 치과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고 졸업 후의 진로에 대해 확신을 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과거와 너무 다르다. 병원에 내원한 일반 환자에게 수술적 치주치료 전 학생 진료실에서 비수술적 치료를 하고 오시는 것에 대하여 상의를 드리면 환자가 동의하는 일은 드물게 일어난다. 물론, 대학병원에 내원한 환자들은 개인 의원에서 치료하기 어려운 증례가 많으며, 학생 진료는 장시간의 치료시간이 필요하다보니 학생 진료에 동의하기 어려운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게다가 지난 1년간은 코로나 사태로 병원에 내원한 환자가 전반적으로 급감하여 일반 환자 중 학생 진료를 받으시는 분은 더더욱 찾기 힘들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학생들은 졸업을 위한 최소증례를 충족하기 위하여 치과 치료가 필요한 가까운 지인들에게 학생 진료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생들 지인 환자는 비교적 치주질환이 심하지 않은 치은염이나 치주염 초기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염증이 심한 환자에서처럼 치료 후 염증이 완화되는 과정을 직접 관찰하기 어렵고, 비수술적 치료 및 수술적 치료의 연계된 과정을 추적 관찰할 수 있는 증례도 드물다. 또한, 지인 환자도 학생도 모두 예약 시간에 관대하다보니 진료에 필요한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 등 진료 외의 과정을 충실히 하지 않아 준비가 미흡한 경우를 종종 관찰하게 된다. 진료 시간 중에도 지인 환자를 대상으로 커뮤니케이션 실습은 쉽지 않다. 학생은 예비 치과의사로서 환자와의 체계적인 문진을 하고 검사를 해야 하지만, 지인도 학생도 모두 어색해하여 충분한 설명과 안내를 못하는 일도 있다. 학생들 역시 지인을 대상으로 임상 실습을 하는 것의 제한점과 한계를 알고 있음에도 현 상황에서 다른 대안이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학생 진료실 운영과 관련하여 2018년 한국 치과대학·치의학전문대학원협회 주관 원내생 교육 워크숍에서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하여 논의한 바 있다. 그 중 가장 절실하게 와닿았던 부분은 학생 진료실 수가였다. 학생 진료실은 대학병원 내에 설치되어 대학병원에 내원하는 일반 진료와 동일한 보험 수가가 적용된다. 일부 대학병원에서는 학생 진료비 감면 프로그램 등을 통해 일부 진료비를 지원하기도 하나, 결론적으로 대한민국의 학생 진료비는 동네 치과의원보다 비싸다. 우리나라는 의료 선진국으로 걸어서 5분 거리에 치과의원이 있으며 적절한 비용에 양질의 진료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일반 환자가 동네보다 더 비싼 진료비를 감수하면서 학생 진료를 선택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지 않을까?

 

현재 학생 진료실은 양질의 치과의사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학생, 환자, 병원의 희생과 노력으로 유지되고 있으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의문이다. 대학에서도 학생 진료비를 지원하기 위한 동창회, 사회단체 기금을 마련하는 등의 자구책을 강구하고 있으나 학생 수와 실습 증례에 비하면 역부족이다. 미국의 학생 진료비는 일반 진료비의 1/5-1/10수준으로 책정되어 있어 장시간의 치료시간이 필요한 학생진료를 선택하는 환자를 배려하고 있다. 호주 역시 치과대학 교육이 주 정부에서 운영하는 진료 시설과 연계되어 저소득층, 18세 미만의 아동에 대한 진료를 지원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 중 태국도 치과대학 학생진료의 경우 본인 부담금이 면제되어 치과 치료가 필요한 다양한 사람들에게 치과 진료를 제공하면서 미래의 치과의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한다.

 

따라서, 대학병원 내에 설치된 학생 진료실에 한하여 보험 진료의 본인부담금 폐지 등과 같은 법적 제도적 개선을 통해 학생들에게 양질의 배움의 장을 마련해주기 위한 치과계의 노력이 절실하다. 학생들은 다양한 증례를 통해 미래의 치과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할 수 있으며, 치과의사를 키워내기 위해 본인의 시간을 투자해주신 선한 환자분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향후 학생 진료실이 다양한 환자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좋은 치과의사를 양성하는 참교육의 장으로 발전해나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치과계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봐야 할 때이다.

박신영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치의학임상교육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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