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생산적인 놀이의 중요성

2021.08.11 11:17:59

스펙트럼

한국사회에서 비생산적인 놀이라는 것은 가급적 하면 안 되고,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여겨왔습니다. 오죽하면 노동(labor)이라는 단어를 넘어선 근로(diligent work)라는 용어를 쓸 정도입니다.

 

최근에 ‘마흔’과 관련된 책들을 읽거나 콘텐츠를 찾아보고 있습니다. 공통적으로 생산적인 일을 더 열심히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를 기쁘게 하는 즐거운 비생산적인 놀이들을 찾아내라고 합니다.

 

이삼십대는 아무거나 해도 재미가 있었습니다. 영화관에서 아무 영화나 봐도 비록 평점이 낮은 영화라 하더라도 실패했다고 우울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개인적인 시간이 매우 소중하기에 실패하지 않을 놀이를 찾게 됩니다.

 

가성비가 좋거나 아니면 아주 재밌거나 또는 돈이 많이 드는 실패하지 않는 확실한 놀이를 하려고 합니다(이 맥락은 유정아 작가의 소비에 실패할 여유라는 글을 보시면 더 이해가 잘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손쉬운 스마트폰 같은 것으로 서핑을 합니다. 영화도 수많은 콘텐츠가 있지만 고를 때 30분 넘게 고르면서 기진맥진할 때가 빈번합니다. 놀려고 해도 놀줄을 몰라서 쉬는게 쉬는게 아니게 됩니다.

 

딱히 Wish List를 만들어, 하고 싶은 것들을 고민하지 않고 열심히 꾸역꾸역 살았을 때, 약간의 여유시간이 생기거나 놀려고 할 때 어떻게 놀 줄 모르게 됩니다. 최근 치의신보의 인문학 특강에 김경일 교수님의 콘텐츠가 메인에 올라온 것을 봤습니다. 김경일 교수님의 다른 유튜브 콘텐츠를 보면 Wish List를 매우 강조하십니다. 평상 시 할 수는 없어도 하고 싶은 일들을 고민해 놓고 이를 계속 보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이해하게 되고, Wish List를 하나씩 해 나가다 보면 내가 남은 인생도 즐겁게 살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강의에서 이야기하십니다.

 

저번 칼럼에서 소진과 번아웃을 얘기할 정도로 사실 저는 지금 하는 일들 중에 대부분은 사실 별로 하기 싫고 관심도 없지만 상황상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들입니다. 이러한 것들만 계속하다 보면 에너지가 고갈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Wish List를 만들면서 또한 비생산적인 놀이를 하루 일과에 조금씩 섞는 테크닉을 요즘 쓰고 있습니다.

 

직업 특성상 여러 회의에 참여합니다. 누구나 다 그렇지만 짧고 간결한 회의,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관심있는 회의만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사회에서 그렇게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긴 회의를 겪게 되고 그러고 나면 회의 후 한동안 소진된 상태로 아무것도 못하는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 많이 했던 레고 블록 장난감을 사서 하루 5-10분 잠깐 하면 다시 에너지가 채워집니다. 이 에너지로 하기 싫지만 해야 되는 일을 다시 합니다. 적극적으로 비생산적인 놀이를 해야 역설적으로 더 생산적이게 됩니다.

 

레고에서 시작한 놀이를 Wish List로 확장해가면서 앞으로 할 것, 하고 싶은 것들을 고민해 나가면서 생산적인 일을 하는 에너지를 얻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과거에는 비생산적인 놀이를 하면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한국사회에서는 특히 그랬죠.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습니다. 이 비생산적인 놀이는 저에게 생산적인 일을 할 에너지를 줍니다. 그리고 과음과 스트레스와 같이 건강에 해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해주기에 매우 건강한 활동이 됩니다. 내 마음 속에 내가 원하지 않는 일들로 가득 차서 힘들어하는 분께 저의 해결방법이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현재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예방치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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