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와 치과는 왜 나누어졌을까? (3)연구

2022.11.02 15:36:40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45)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치과의사로써 간혹 의사나 사회의 시각이 당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의사보다 전문성이 부족한 직업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곤 하지요. 그래서 묻습니다. 의과와 치과, 의학과 치의학은 어떻게 나누어지게 되었나요? 앞으로 이런 차이에 변화가 생길까요? 익명

 

※ 이번 회차까지 세 번에 걸쳐 의과와 치과의 분리에 관한 내용을 다룹니다. 전문직의 분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교육, 제도, 연구를 차례로 살펴봅니다.

 

이 지면을 통해 두 차례에 걸쳐 교육, 제도에서 의과와 치과가 분화되던 순간을 살펴보았습니다. 지리한 옛이야기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걸음만 더 떼어 보려 합니다.

 

지금 우리는 치의학이라는 분야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치아, 구강, 인접 조직 및 악안면부에 대한 의학적 연구가 치의학의 정의라는 데에 큰 이견은 없으시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연구가 언제부터 별도의 학문이 될 수 있었을까요? 치아라는 조직이 특별했기에 처음부터 치의학이 별도 학문이었을 리는 없습니다.

 

치과의사가 있었기에 치의학이 별도로 독립되었다는 생각은 타당하지만, 치과의사를 정의하는 것이 한편 치의학을 수행하는 사람이기에 이런 정의는 순환합니다. 즉, 구강 및 악안면부의 연구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주로 의사와 치과의사를 구분했던 주요소였던 경제적인 이유와는 별도로 학문적으로 나누어진 순간과 그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 순간을 두 가지로 꼽습니다. 하나는 G. V. 블랙이 그때까지 우식의 발생 원인으로 여겨진 내생설(內生說)을 거부하던 19세기 말입니다. 다른 하나는 불소가 “실제”로 우식을 예방할 수 있음이 밝혀지던 20세기 초중반입니다. 물론, 후자는 치의학이 생긴 다음에, 또는 치의학을 다루는 학술지가 이미 권위를 인정받은 다음에 나타난 것이지만, 저는 치의학의 성립에 있어 그 중요성을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지면상 여기까지 살펴보기는 어려울 것이고 많이들 아시는 이야기이기도 하니, 블랙의 이야기만 살펴보려 합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블랙은 20세기 초 지울 수 없는 업적을 남긴 미국 치과의사입니다. 그는 치아수복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지요. 1857년 도제 교육을 받고 치과의사가 된 블랙은 이후 다시 정식 교육을 받은 다음 아이오와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다양한 영역에서 엄청난 연구 업적을 남겼지요.

 

그는 1885년 12월 9일 동료 치과의사 R. R. 앤드루스와 함께 뉴욕주 치과의사회에서 자신의 주장을 발표합니다. 당시 치과계는 우식의 발생 원인이 치아 내부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 해부학자, 피부과 의사 칼 하이츠만의 생기론적 세포 이론에 영향을 받은 의학자들은 바이오플라손(bioplasson) 이론을 주장했어요. 이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의 거대한 세포요 치아는 뼈 조직의 돌기였습니다. 치아의 변화는 인간-세포의 생기(生氣)가 줄어들면서 나타나는 돌기의 액화(液化)라고 이들은 말했지요. 간단히 말해, 우식은 인간 생명력이 감소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반대하던 블랙과 앤드루스는 우식의 외생설(外生說), 즉 우식은 치아 외부에서 발생하는 영향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강변했습니다. 앞서 1884년에 발표한 책에서 블랙은 음식물 잔사에서 나오는 산이 치아의 변형을 가지고 온다고 주장한 바 있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주장이었어요. 세균이 음식물을 발효시켜 산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주장은 당시까지 보편적인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이 과정을 활용하여 술을 포함해 여러 음식을 만들어 냈지만, 이것이 구강에서도 일어나며 우식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던 것이지요. 세균학을 만든 로베르트 코흐와 함께 연구하던 윌러비 밀러가 박테리아가 설탕을 발효하여 젖산을 만들어 냄을 확인하고, 구강 미생물이 우식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내놓게 됩니다. 블랙은 이를 자신의 임상 경험 및 지식과 연결하여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우식 원인론을 내놓은 것이지요.

 

저는 이 순간을 치의학의 탄생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치아를 치료하거나 성형하는 방법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발치나 우식 치료, 의치 제작 등의 방법은 오랫동안의 시행과 실패를 거쳐 치료 기술로 자리 잡아 갔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술만을 현재 우리가 부르는 방식에서 “치의학”이라고 명명하기는 어렵지요. 네, 그 배경이 되는 의과학 지식을 결여하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설명이나 ‘이론’이 붙어 있었을 테지만, 현대 학문의 방식으로 구성된 지식은 아닙니다.

 

반면, 블랙은 자신의 임상 경험과 의과학 지식을 결합, 우식의 새로운 이해를 제시합니다. 이 이해 방식에서 중요한 것은 치과 임상과 그에 관련한 의학·과학 지식이 결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치의학이 의학과 구분되는 학문으로 존재하는 원인은 그 연구 대상이 치아나 인접 조직이라서, 또는 사회학에서 이해하는 것처럼 구강을 관리하기 위한 국가의 통제 전략이 낳은 귀결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리고 저는 이 점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학문 분야를 규정하는 것은 한편으론 “의학”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우리의 임상입니다. 임상과 분리된 기초 분야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치과에서의 경험이 우리의 학문을 정의하는 요소가 된다는 것입니다. 현재 대학은 기초 연구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치의학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임상 경험을 이해하기 위한 학문적·학제적 노력은 치의학으로 부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지요. 또한, 그렇기에 새로운 학문들, 이를테면 당장 여기에서 논의하고 있는 의료윤리 또한 치의학의 한 분야로 포섭될 수 있습니다. 아직 “치과의료윤리학” 같은 분야는 없지만, 의료윤리의 틀을 가져와 치과의 경험을 설명하는 것이 그 분야를 치의학의 하나로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치의학의 범위 자체는 계속 변화하고 있으며, 그 정의나 방향 또한 계속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치의학”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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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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