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에 임하는 자세

2023.02.28 16:11:05

시론

작년 겨울 요양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앞니가 부러져서 빠졌다고. 코로나로 면회가 중단되기 전까지 나는 매주 주말 어머니께 찾아가 잇솔질을 해드렸었다. 뇌졸증으로 어머니는 몸 한쪽의 거동이 불편하시고, 이를 잘 못 닦으시니 오래된 브릿지가 수명이 다 된 것이다. 어머니 파노라마를 열어보았다. 틀니를 잘 못 쓰시니 임플란트밖에 답이 없었다. 연로하신 어머니에게는 시간과 체력이 넉넉하지 않았다.

 

항혈전제를 복용하시는 아흔의 노모를 코로나 시국에 모시고 나와 여러 개 발치와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 코로나 검사 등 모시고 나오는 과정도 쉽지 않고, 요양병원에서 치과는 한 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수술을 하더라도 어머니 건강 상 복용 약을 중단할 수 없었고, 하루에 다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느 일요일 나는 어머니 임플란트 수술을 하였다. 어머니는 한 달 가량 고생하셨다. 나는 요양병원에 드레싱 하러 몇 번을 갔고, 요양병원 원장님도 나의 무모함에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확신과 불확신 속에서 불편한 몇 달을 보냈다. 마침내 지난 여름 보철 완성하던 날, 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셨다. 나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내 휴대폰에 담았다.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후회 없이 살고 싶지만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의 인지 기구(cognitive machinery)는 후회하도록 미리 프로그램 되어 있다고 한다. 후회는 삶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후회를 곱씹는 사람은 삶의 만족도가 떨어지고 부정적인 삶의 사건을 대처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후회가 반복될 때 특히 그렇다고 한다.

 

최근에 후회를 어떻게 승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지혜를 담은 다니엘 핑크의 <후회의 재발견>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후회를 최적화(optimization)함으로써 미래의 행동을 위한 자극제로 삼고,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데 후회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후회에 임하는 지혜로운 자세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살면서 크고 작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겪으며 때때로 후회한다.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행동했던 것에 대한 후회보다 행동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후회를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을 오래전에 밝혀냈다. 행동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행동한 것에 대한 후회보다 거의 두 배나 더 많다는 연구도 있다.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우리가 행동한 경우에는 그 결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기 때문이다. 결과를 이미 확인한 일에 대해서는 후회의 반감기가 줄어들지만, 행동하지 않았을 때는 그 결과 무슨 일이 어떻게 전개되었을지 알 수 없다. 그런 이유로 행동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더 오래 살아남고,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자주 상기된다는 것이다. 고백하지 못한 첫사랑이 오래가는 이유이다.

 

한편, 후회에는 다음 네 가지 범주가 있다고 한다. 기반성 후회(foundation regrets)는 책임감 있게 행동하지 않았거나 성실하지 못했거나 신중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후회이다. 대담성 후회(boldness regrets)는 행동하지 못해서 흘려보낸 기회에 대한 후회이다. 도덕성 후회(moral regrets)는 도덕적으로 행동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이다. 관계성 후회(connection regrets)는 배우자, 파트너, 부모, 자녀, 형제자매, 친구, 급우, 동료 등과의 관계가 단절되거나 실현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이고 후회의 범주에서 가장 큰 범위를 차지한다.

 

모든 후회는 대부분 이 네 가지 범주에 포함된다.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내가 어머니 임플란트 수술을 안 했다면 지금쯤 나는 대담성 후회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술을 하고나서도 나는 한동안 기반성 후회를 했다. 돌이켜보면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니 나는 후회를 조금 더 적게 하는 쪽으로 선택한 것이다.

 

후회를 통해 우리는 더 현명한 선택, 더 높은 성과, 더 큰 의미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자기노출(self-disclosure), 자기연민(self-compassion), 자기거리두기(self-distancing) 단계를 거치면 가능하다고 한다. 후회의 감정이 들 때는 먼저 말로든 글로든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심리적으로 이롭다는 것이 밝혀졌다.

 

자기노출은 우리의 짐을 가볍게 해주고, 추상적인 부정적 감정을 더 구체적으로 만들어주며, 유대감을 형성하도록 돕는다. 자신에 대한 내밀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친밀감과 호감을 더 많이 형성한다고 한다. 자기연민은 좌절과 실패의 순간에 자신을 질책하는 대신 온정과 이해심을 베푸는 것이다. 이런 자기연민은 낙관주의, 행복 등을 증진시키고, 우울증, 불안, 스트레스 등을 경감시키며, 면역력을 증진시킨다고 한다. 자기거리두기는 후회를 자꾸 곱씹는 몰입행위에서 벗어나 좀 더 거리를 두고 경험을 재구성하여 통찰을 얻고 마음을 정리하는데 더 집중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문제 해결 능력이 향상되고, 지혜가 심화되며,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혈압을 낮출 수 있다고 한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이 세 단계를 모두 실행했다. 어머니 당신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고생시켜드려서 죄송했지만, 환한 얼굴로 나에게 대답해주신 것이라 생각했다. 다니엘 핑크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하며 마친다.

“후회는 나를 인간으로 만든다. 후회는 나를 더 낫게 만든다. 후회는 내게 희망을 준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재성 믿음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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