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그리고 Re-Tire

2024.05.22 16:47:59

시론

얼마 전에 대학동기들이 모여 친구의 회갑을 축하해주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예과에 입학한 지 40년이 지났으니 참 오랜 세월이 지났더군요. 나르는 화살보다 더 빠른 것이 세월이라고 했던가요? 비록 외모는 갓 입학했을 때의 탱탱한 피부도 아니고 머리도 많이 빠진 친구도 있고, 얼굴에 주름도 많은 외모이지만 모두의 마음과 분위기만은 학창시절의 그대로여서 나이도 잊어가며 왁자지껄 즐겁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너희들 치과를 언제까지 할 생각이니?”라고 화두를 던졌고 다들 웃고 떠들던 분위기가 제법 진지하게 바뀌면서 각자의 생각을 말하는 시간을 가져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친구는 딱 5년만 하고 그만두겠다, 또 다른 친구는 10년은 더 하겠다, 또 다른 친구는 체력과 건강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오래 하고싶다라고 하였고,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친구는 여러 가지 상황이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므로 꼭 언제까지 하겠다라는 마음은 진작에 접었고, 하루하루를 지내보다가 도저히 안되겠다고 느껴질 그 때가 그만둘 때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눈 이야기가 치과의사가 일반인 비해 근골격계 질환이 28배, 신장질환 13배가 높고,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해서 60% 이상이 우울증을 경험하며, 그 외에도 타인과의 신체 접촉을 통한 질병 감염 위험도도 매우 높고 난청 등의 직업관련 증상들이 많이 나타난다는 반갑지 않은 기사가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50세 이상의 치과의사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5%가 은퇴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으며, 사유는 본인의 건강문제 30%, 환자와의 관계 21%, 병원경영문제 17% 정도의 순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에도 지인 치과의사분들 중에서 크고 작은 건강문제로 진료를 한동안 쉬거나 아예 병원을 정리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많다라는 것에 대해서도 나누었습니다. 직업을 불문하고 건강은 잃기 전에 지켜야하는 중요한 동반자라는것을요.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옆도 쳐다보지 않고 앞만 보며 정신없이 한 우물만 파면서 지내왔는데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에 거울 앞에서 연약해진 나를 마주쳐 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전에는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진료를 하고 나도 퇴근하면 이리저리 모임도 참석하고 취미활동을 할 여력도 있었는데 이제는 내일 진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체력적인 한계를 느끼고 있다는 것도 새삼 떠오릅니다. 그러고 보니 여느 치과의사 모임에 가도 이제는 배정되는 자리가 거의 상석이 되어가고 시니어 대접을 받고 있어서 은퇴라는 단어가 그리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그런 때가 되었나봅니다. 과연 은퇴 후의 삶은 어떤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라는 불안감이 스쳐지나가더군요.


그런데 은퇴란 단어는 영어로는 retire인데, 신기하게도 ‘타이어를 다시-바꾼다’라는 뜻이 된다고 존경하는 어느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셨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 단어를 따르자면 은퇴는 일에서 물러나서 사회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하게 지낸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낡은 타이어를 빼고 새로운 타이어를 끼는 행위 즉, 새롭게 다시 시작한다라는 뜻으로 재해석하면 될 것 같습니다. 과거 주위의 선배님들은 꽤 이른 나이에 환자 보는 것을 그만두시는 분들을 많이 보았는데 점점 시기가 늦어지고 있습니다. 필자는 파트너분들과 공동개원을 거의 30년째 하고 있는데 처음 공동개원을 시작했을 때에 작성했던 계약서에는 은퇴의 시기가 65세라고 명기했다가 이제는 계약서를 갱신하여 제약없는 것으로 수정을 했습니다. 주위에는 연세가 80을 훌쩍 넘기고서도 차분히 치과를 운영하고 있는 경우도 자주 접하게 됩니다. 하지만 모두들 입을 모아서 이야기 하는 것은 환자를 진료해주는 것이 좋아서여야지 경제적인 이유로 어쩔 수 없어서 무리해서 하는 것이라면 너무 슬퍼진다는 것이었습니다.


50대에 사망한 어느 치과의사분께서 남긴 글이 마음에 꽂힙니다. ‘환자 수에 욕심내지 않고 자신있고 스트레스가 적은 진료를 주로 했더라면, 일주일에 두 번씩 해 왔던 야간진료 대신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더라면, 진료실의 미세먼지, 분진 등 위해요소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더라면, 진료실에서 가졌던 스트레스를 집으로 가져가지 않았더라면,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봉사를 할 수 있었다면, 자연과 가족을 벗삼아 많은 여행을 다니며 더 넓은 세상을 보았더라면...'.


은퇴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담담하게 적극적으로 받아드리려 합니다. 곧 다가올 회갑이 마음속의 은퇴의 때입니다. 그리고 다시 ‘re-tire’ 하려 합니다. 지금까지는 옆도 안보고 앞만 바라보면서 달려왔다면 이제는 옆 뿐만 아니라 뒤도 보면서 천천히 걸어보려 합니다. 원로라 함은 ‘한 가지 일에 오래 종사하여 경험과 공로가 많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나이가 제법 든 이후에 여러 모임에서 외면받지 않고 이러한 호칭으로 불리며 함께 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치과가 사회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데 밑거름이 되고, 그리고 후배들로부터 새로운 지식과 에너지를 받으면서 기회가 닿는 대로 그들에게 도움이 되면서 지내보리라 하는 다짐을 해봅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전승준 분당예치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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