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과 을

  • 등록 2025.08.06 16:5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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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트럼

갑을 관계는 어느 사회나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질서다. 연인 관계나 가족 관계에서도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은연중에 그 관계가 자리잡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관계는 신기하면서도 오묘한 면이 있다. 왜냐하면, 아무도 ‘을’이 되고 싶어 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그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치과라는 환경에서도 치과의사는 자연스럽게 ‘갑’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


치과의사는 환자에게 치료를 제공하는 ‘전문가’로서, 치료 과정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환자는 그 결정을 따르게 된다. 그런 이유로 치과에서의 갑을 관계는 쉽게 자리잡을 수 있다. 그런데 아직 사회적으로 경험이 부족한 내가 느끼기에, 그런 관계의 근본에는 때때로 자만이 숨어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자만이라는 것은 정말 교묘하다. 우리가 ‘전문가’로서 권위 있는 자리에 있을 때, 자칫 그것을 당연시하게 여기고 우월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자만은 강한 상대가 등장하면 그때서야 그 본모습을 드러낸다. 더 강한 권력자가 나타나면 자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때서야 우리는 ‘을’처럼 변하기도 한다. 특히,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나 권위를 가진 환자 앞에서 ‘갑’의 자리를 내놓고 ‘을’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아주 비난하고 싶지만은 않다. 어쩌면 그런 모습도 사회적 환경과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태도 속에서 느껴지는 낯부끄러움은 내 몫일 수밖에 없다. 그만큼 그럴 때일수록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그 고민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이런 간단한 진리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 아쉽기도 하다. 어쨌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환자의 건강을 책임지는 중요한 주체로서, 그 책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환자와 함께 건강을 지켜나가는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치과의사는 환자의 치료를 맡고, 그들의 건강을 지키는 일을 한다. 이 과정에서 상호 존중과 신뢰가 형성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리더십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 또한 언젠가는 나도 모르게 자만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 이런 생각을 글로 남기고 싶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지금의 상태가, 오히려 더 중요한 순간이 아닐까 싶다. 진정한 책임을 지고 환자와 함께 치료에 임하고자 하는 마음을 항상 기억하고 싶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예슬 서울대학교 치과병원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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