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의 향연(시)]이齒2 -王과 어금니/송성헌

  • 등록 2008.04.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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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오백년 동안 누운 자리에 하얗게 치관만 남겨놓고
사라진 사랑니의 아픔은
다하지 못한 채로 차게도 남아 있습니다
닳지도 아니한 왕비의 치아는
목 잘려 나간 불상들 뒤로
고름이 돋아난 만큼의 산수유 옆으로
과거가 겹겹이 정리되어 쌓여있는 박물관속으로
왕, 사마왕 옆에 혼자 있었습니다

 

인사하는 대가로 입장료를 내야 한다 길래
오케이 하고는
지금 내가 조금 뒤늦게 태어난 죄로
썩었던 것들을 모아 둔 매장에 들어간다는 것이지 맞지?
먼저 간 사람들을 불쌍한 듯 뒷짐지고 뻐기면서
삶은 과정이라는 명제를 새기면서 맞지?


그런데
많았던 금 장신구들이 찰랑였을 그 무거움을
폼나게 다렸을 다리미가
돋보이고 있는 박물관은
왜 어두운가요? 쉬이, 그분이 깰가봐서 그렇지
이런 배려에도 답답한 건
쓰린 사연이 녹아 든 시간들 때문
원래 인간들이란 게 남의 아픔을 즐기며
사니까 그런 거지
넘 잔인해도 이해해 주세요
다 널 위해서란 것을 훗날 알게 될 것이니까
그런데도 지금 당장 무엇이 더 잔인하냐면
우린 모두가 썩어갈 준비를 한다는 사실
아니 더 슬프게도 우린
매일 썩어가는지도 모른다는 사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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