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y Essay
제1534번째
섬집아기의 사모곡(思母曲)
최치원
서울 최치원치과의원 원장
엄마가 섬그늘에 굴~따러가면 아기가 혼자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오늘도 라디오를 켜놓고 나홀로 운전족이 되어 한강을 넘어 출근을 하고 있는데 스피커에서는 ‘섬집아기’가 흘러나온다. 여자가수가 애잔하게 부르는 이 노래는 어렸을 때부터 수없이 들어왔던 동요이지만 오늘따라 더욱 절절하게 내 마음속 깊이 파고들며 나의 눈과 마음을 감상에 젖게 한다.
동호대교위에서는 새무리가 멋진 편대를 이루어 날아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제일 앞선 놈 뒤로 삼각자로 잰 듯 정확하게 ‘V’자를 이루는 새무리가 장관이다. 제일 앞장선 새 한 마리는 뒷새들이 편히 비행할 수 있도록 상승기류를 만들어주느라 아주 힘이 세고 영리한 리더가 이끌어간다고 한다. 과연 이 놈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 많은 녀석들을 이끌고 어디로 머나먼 비행을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하다보니 우리 가족을 이끌어주셨던 엄마의 모습이 대비되어진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이제 더 이상 우리를 이끌어 주지 못하시고 머나먼 여행을 홀로 떠나버려 지금 우리 곁에 계시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내가 제일 앞선 놈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막연한 두려움과 부담감이 스멀스멀 생겨나기 시작한다.
어릴 때부터 학창시절, 결혼, 개원까지… 많은 세월을 앞장서 이끌어주시고 혹시라도 뒤따라 오는 자식들이 힘들지는 않을까 더 많은 날개짓을 해주셨던 어머니가 불현듯 생각나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진다.
운전석 문 안쪽에 있는 주유소 휴지를 꺼내어 눈물을 주섬주섬 닦아내고 담배에 불을 붙여 나를 진정시켜 본다.
‘섬집아기’ 노랫말처럼 엄마라는 사람은 굴을 따다가도 항상 마음은 집에 혼자 있을 자식걱정에 안절부절해 하시며 괜한 걱정근심으로 거친 모랫길을 한걸음에 달려오시는 것을 평생 반복하며 사셨던 분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본다.
생전 어머니께 전화드리면 간단한 안부인사와 용건 뒤에 반드시 담배 피지마라, 오늘 황사가 온단다 밖에 나돌아 다니지 마라, 외식 많이 하면 건강에 안 좋으니 집에 꼭 일찍 들어가 밥 먹고 운동하고 일찍 쉬어라, 환자 보느라고 얼마나 목이 빠졌니? 돈 많이 벌려고 아등바등하지 말아라, 마누라 말 잘 들어라 등.
엄마의 잔소리가 지겹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아내의 똑같은 잔소리보다는 엄마의 잔소리가 더욱 애틋하고 진한 고향의 냄새를 전해주는 정으로 다가옴은 어쩔 수 없었다.
엄마의 잔소리가 없어진 지금 자유로움보다는 외로움이 더 커지고, 새삼 엄마의 잔소리가 그리워짐은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인가 보다.
넉 달 전, 작년 11월 27일, 우리 엄마는 하늘나라로 가셨다.
돌아가실 때 임종도 못 뵈었는데, 임종을 하는 순간 막내 아들부부와 손녀들이 같이 했다면 가시는 길 마지막 손이라도 잡아드리면서 작별인사를 했을텐데…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임종 순간까지도 집에 혼자두고 온 아이를 걱정하셨을 엄마, 혼자 남겨질 남편을 걱정했을 엄마… 이제는 고단한 날개 고이 접으셨으니 걱정도 같이 접으시고 편안히 잠드소서….
장례치르고 삼우제 지내고 49제 지내고 나서도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실감이 안 나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비슷한 연배의 할머니만 뵈어도, 예쁜 꽃을 보아도, 눈이 와도, 어머니 좋아하셨던 음식을 봐도, 어머니와 같이 했던 공간을 생각만 해도 어머니를 그리워하게 됨은 자식이기에 어쩔 수 없이 갖는 모정에 대한 연민이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퇴근을 하느라 장충체육관앞을 지나는데 또 하나의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와 나를 찡하게 한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옛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날에 내가 부모되어서 알~아보리라
겨울이면 가족이 두런두런 모여앉아 생고구마 깎아먹고 생무깎아 먹으며 어머니 일제시대 때 무서운 일본순사 이야기, 6·25전쟁 때 인민군 피해서 항아리 속에 숨어 있었다는 이야기, 어렸을 때 외갓집 형제들끼리 싸웠던 일, 옆집 친구 공부 잘한다고 비교하며 혼내시던 이야기….
엄마랑 둘이 밤늦게까지 삼봉(화투)치면서 토닥거렸던 일, 엄마한테 용돈 달라고 조르던 일… 엄마랑 시장보러 갔던 일… 군대 간다고 버스밖에서 눈물흘리시는 모습….
대학 졸업하고는 공보의 때 첫 월급 받아 엄마 모시고 백화점가서 옷 사드리고, 반지 사드리고, 맛있는 것 사드렸을 때 엄마가 대견해하고 기뻐하시고 주변 친구분들께 늘어지게 아들 자랑하셨다는 말을 전해주셨던 일들이 무엇보다 보람이었었는데….
이제는 그야말로 진짜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네요. 영원히 그리운 엄마로 가슴속에 간직한 채 힘들고 지칠 때 반추할 수 있는 멋있는 엄마의 옛 이야기로 담고 살아가렵니다.
운전석 옆 콘솔박스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눈에 띈다.
단축번호 ‘9’를 누르면 아직도 엄마 목소리가 나올 것 같은데 누를 수가 없네요. 아니 눌러봐야 이제는 아무런 대답이 없을 것을 알면서도 단축번호 ‘9’를 지울 수가 없습니다. 단축번호‘9’를 지우면 엄마도 같이 지워질 것 같아서요.
대신, 하늘을 바라보고 엄마랑 시시콜콜한 대화도 하면서 진짜 그리울 때는 차문 꼭 닫아놓고 큰소리로 “엄마!”하고 외쳐볼랍니다.
힘들었던 투병 끝내고 하나님 곁에서 평안하게 영원히 살아계실 것으로 믿고 저는 편안한 마음으로 내 본연의 일상으로 돌아가렵니다. 엄마! 세상에 저를 보내주시고 사십육년을 같이 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2010년 3월 말 불효자식 치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