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에서의 “부러진 화살”
얼마 전에 가족 모두 ‘부러진 화살’이라는 영화를 함께 관람하였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로서 대학 입시시험에 출제된 수학문제 오류를 지적한 뒤 부당하게 해고된 한 교수가 교수지위 확인소송에서 패소하고 항소심마저 정당한 사유 없이 기각되자, 담당판사를 찾아가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며 석궁으로 위협하기에 이른다. 격렬한 몸싸움, 담당판사의 피 묻은 셔츠, 복부 2cm의 자상, 부러진 화살을 수거했다는 증언… 곧이어 사건의 파장은 일파만파 퍼져나가고, 사법부는 그 교수의 행위를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규정짓고 징역4년의 실형을 선고한다.
영화 내내 깔린 배경 컨셉은 ‘공권력에 도전한 한 대학교수’를 응징하려는 사법부내에서의 여러 담합, 부조리를 조소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대부분의 법조인들은 항상 죄를 지은 사람들에 대해서 어떤 판결을 내릴 것인가를 결정하는 위치에 있다 보니 다른 국민들보다 상위의식을 느끼면서 지내기가 쉽고, 그러므로 그런 대상에 대해서 도전을 받는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당황하여 대책회의를 하고, 결과적으로는 법정에서의 재판과정이 증거도 불충분한데도 매우 범법행위를 한 쪽으로 편향되게 전개되어 유죄를 확정지어 버렸고, 그 교수는 4년의 징역을 마치고 얼마 전에 출소하였다고 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또는 보고난 후의 나의 느낌은 집단 이기주의에 대한 씁쓸함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병원에서 환자와 관련해서 그런 비슷한 일이 생겼다. 환자분의 치료를 성심껏 해드렸는데도 여러 가지 이유로 컴플레인이 생겼는데 일방적으로 환자분께서 그 분의 입장에 대한 주장이 강하니 우리병원의 치과의사와 직원들은 한 마음이 되어서 그 분의 행동을 의료행위에 반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대응하게 되었고, 그분을 이상한 사람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우리로서는 할 도리를 다 했는데 환자분이 과하게 요구한다고 몰아갔고, 그 상황을 더 못 참게 된 환자분은 더욱 본인의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생긴 것이다. 다행히 중간에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어서 잘 마무리는 되었지만 나중에 이야기하시는데 그분이 우리 병원에 느끼신 가장 나빴던 감정은 모두가 한 편이 되어서 본인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려는 것을 느낄 때였다는 것이었다. 마치 영화속의 판사들처럼…
사람들은 누구나 본인의 입장이라는 것이 있다. 본능적으로 본인에게 유리한 쪽으로 생각하려는 습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말도 우리가 흔히 하면서 생활한다. 직역하면 “처지를 바꾸어서 그것을 생각하라”로,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헤아려보라는 말이다. 하지만 일상생활을 무심코 하다보면 그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는 것을 깨닫고는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우리병원에서 있었던 일처럼 환자와의 언쟁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방어적이 되고 은근히 환자를 왕따 시키려는 분위기가 생기는 것이 안타깝다. 치과에 대해서 모르는 환자분이 하는 말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면서 말이다.
지금부터라도 노력해야겠다. 너무나도 많은 치과의사 배출시대, 환자유치 경쟁시대에서 조금이라도 환자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의료인이 될 때에 경쟁력은 저절로 생길 것이다. 그러면서 더 이상 우리치과에서처럼 ‘부러진 화살’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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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승 준
분당예치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