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trum] ‘고도를 기다리며’

  • 등록 2012.05.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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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trum

‘고도를 기다리며’


박 세 호
박세호치과의원 원장


내가 연극이라는 것에 처음 매력을 느낀것은 87년, 대학 2학년때 대구 시민회관 소강당에서 본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작품을 보고난 이후다. 혼돈의 시대, 뭐 좀 색다른 것 없나 기웃거리다 선배가 아는 분이 공연한다고 오라해서 간 곳이 시민회관이었다. 관극후 느낌은 당황스럽다고 하는편이 나을거 같다. 무대장치라고는 말라비틀어진 나무 한그루 달랑있고, 대사라고는 전혀 논리가 없을 뿐 아니라, 기승전결의 일반적 전개도 보이지 않는, 하지만 뭔가 강한 끌림이 느껴지는 부조리극이었다. 그 후 당연스럽다는 듯, 치과대학 연극반을 들어갔고, 지금도 있는 ‘처용’이라는 기성극단에 단역으로 출연해 기성배우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볼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본2때는 그렇게 하고 싶었던, ‘판도와 리스’라는 스페인작가 페르난도 아라발이 쓴 부조리극의 주인공이 되어 보았다.


경북대 허 영 교수님이 쓰신 ‘부조리극’이라는 책을 탐독하고, 이듬해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부조리극 연출을 야심차게 준비하다, 학교 전체가 수업거부에 들어가는 바람에 축제가 취소되어 극을 올리지는 못했다. 그러다 졸업을 하고, 군대를 다녀오고, 개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애들이 태어났다. 그 사이 나는 서울에 있는 산울림 소극장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세 번 더 보았다. 임영웅씨가 연출한 것으로 그는 이 작품을 1969년 초연하여 지금까지 연출해오고 있다. 가히 그 작품과 평생을 함께 하신 분이다. 서울을 오르내리며 중앙대 이원기 교수님의 고도를 기다리며(무대화를 위한 연구)라는 책을 읽었다. 그러다 지금의 극단대표를 만났다. 그 친구는 그 당시 중앙대 예술대학원 석사과정에 있었다. 처음만나 부조리극 얘기를 하면서 이원기 교수님 책을 읽고 있다고 했더니 무척이나 신기해했다. 그도 그럴것이 그책은 연출을 위한 지침서이기도 하려니와 전혀 비전문가인 내가 그것에 대해 관심있어 한다는 것이 그 친구에겐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후 우리는 한배를 탔다. 극단을 만들고 극장을 짓고 작품을 올렸다. 몇 년에 한번씩은 무대에도 올랐다. 이따금 고도를 기다리며를 둘이서 함께 해보는게 어떠냐고 농담삼아 얘기하는데 그는 어색한 웃음으로 넘기곤 한다. 그 작품이 얼마나 대작인지 그나 나나 알고 있으니까, 어지간히 잘해서는 안 되는 극이라는 걸, 욕먹기 딱 좋은 극이란 걸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살면서 아주 우연이라는 것이 늘 그 주위를 맴돌게 하다 결국은 그 가운데 서게 하는 것 같다. 아직도 극장에 들어서면 어떤 향기같은 걸 느낀다. 눅눅한 지하에서 나는, 칠이 바래 오래된 나무가 삭는 냄새랄지, 달아오른 조명 등에서 먼지가 타는 듯한…익숙하다는 건 그만큼 내 것이라는 뜻일 것이다. 내 것은 포기하지 않는 한 언제나 내 것인 것이다. 나는 그렇게 뛰어난 배우도 아니고 연출을 하지도 않는다. 이따금 단역으로 무대에 선다. 단지 연극하는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이 좋다. 그들은 뭔가를 사랑할줄 아는 사람같다. 나처럼 계산해가며 사랑할지 말지를 재는 부류의 인간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늘 고독하며 현실적 벼랑에 몰린 자신을 가까스로 붙들고 있다. 20년전이나 지금이나 그들은 그대로다.


꿈이란 하고 싶은걸 하는 것일 것이다. 어떤 것에 공명이 느껴질때 우리는 이유도 없이 끌린다고 한다.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내안에 있는 무엇이 그것과 같은 주파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운명적이라느니 하는 거창한 말을 쓰고 싶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쓸데없는 긴장감을 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살아오면서 이작품에 대해 더 꼽씹게 되는 것은 우리삶이 너무나 이와 닮아있어서 일것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짓거리로 삶이 채워져있다면 대체 왜 살아가야하는가 하는 이십대의 절규에서부터 마흔이 넘은 지금 그 절규 또한 분절된 혼자만의 독백이었고 어쩌면 그것들로 우리 인생이 가득차있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삶이란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처럼 아주 뜻없이 주고 받는 대화 속에서 그저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마른 나무에서 잎이 나는 작은 변화가 있고 소년은 아직 고도님은 오지 않는다고 하는데 있으니까.


우연이란 때로는 평생을 이끌어가는 화두가 되기도 한다. 부조리하므로 삶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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