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y Essay
제1751번째
56년간 서울대를 지킨 아저씨
5월의 화창한 주말에 문득 모교인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를 들른 적이 있다. 봄이면 꽃구경 하러 유명한 산으로 몰려가지만 사실 휴일의 대학 캠퍼스만큼 여유롭게 꽃과 작은 연못으로 이루어진 길을 따라 산책할 수 있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고색창연한 강의동과 신축된 아름다운 건물에서 드문드문 걸어 나오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며 삼십 년 전의 추억으로 다시 학생이 된 듯한 설렘이 들었다.
학생들의 동아리방과 식당이 있는 학생회관을 둘러보다가 건물 뒤편에 구두와 가방을 수선한다는 팻말이 적힌 허름한 유리문 뒤로 연로하신 할아버지가 보였다. 주름 덮인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니 예전 학생 시절에 보았던 ‘그 아저씨’ 였다. 반가운 마음에 80년대 초반에 학생이었다는 인사를 드리고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드렸다. 삼십 년의 세월을 지나 만난 아저씨. 스무 살 새내기 대학생이었던 내가 어느덧 시간이 흘러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고 결혼하여 낳은 큰 아이가 대학생이 되는 동안 여전히 같은 장소에서 묵묵히 교직원과 학생들의 구두를 수선하면서 늙어가시는 분을 보며 세월의 무심함에 잠시 목이 메었다.
군대를 제대하던 해인 1956년 20대 중반의 약관의 나이에 아저씨는 서울대가 지금의 대학로 자리에 위치해 있었던 문리대 교정에서 구두를 수선하기 시작하였다. 그 인연으로 4·19 학생 운동 때에는 또래의 학생들과 같이 민주화 운동을 하기도 하였으며 1975년 관악캠퍼스로 서울대가 이전할 때에 지금의 장소로 옮겨 일하시며 수많은 역사의 현장들과 함께 하였다.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캠퍼스 학생회관 앞은 군사정권에 대항하려는 민주화 시위와 매캐한 최루탄이 늘 함께하는 장소였고 몇몇 학생들은 전경들에게 쫓겨 다니다가 아저씨가 계시던 이 작은 구두 수선방으로 피해 들어오기도 하였다고 한다.
아, 우리 세대는 꿈 많던 대학 새내기 시절에 당시의 아픈 역사를 온전히 고통으로 맞이하며 지내야 했던 기억이 새로웠다. 지금은 훨씬 밝고 건강하게 다니는 청년들을 보며 우리의 대학 시절을 도둑맞은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오로지 이 분만이 대학 캠퍼스에 남아 묵묵히 당시를 증언하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한테 학생시절부터 와서 구두를 수리하던 사람이 나중에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대학교수가 되고 학장이 되고 하였지. 내가 그 동안 구두 수선을 해드린 총장님이 몇 분인지 이제는 세기가 힘드네” 라고 하시며 웃으시는 모습을 보며 이 시대의 진정한 장인의 모습과 그 분의 기억과 함께 하는 서울대인의 역사를 보았다.
서울대는 민족의 대학이라 일컬어지며 그 동안 숱한 인재를 양성하였고 그 동문들이 이 나라의 역사를 상당 부분 이끌어간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우리 민족의 역사에 큰 공헌을 한 인물도 배출하였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았음을 느낀다. 또한 지금은 중년이 되어 대학에서 전문가를 양성하는 선생님의 시각에서 볼 때 명문대생은 명석한 두뇌와 충만한 자신감을 지닌 강점이 있는 반면 인내심과 끈기가 부족하여 한 조직이나 직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오랫동안 남아있지 못하여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만약 이 땅의 뛰어난 젊은이들이 아저씨처럼 한 곳에서 수십 년을 지낼 수 있고 나름의 가치를 만들 수 있다면 지위와 명예를 떠나 그 자체로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가 되신 ‘서울대 구두수선공 아저씨’는 시간의 연륜 자체로도 서울대의 전설이 되었다. 총장님도 이분을 만나면 반갑고 정중하게 인사할 것이고 나라의 중요 정책을 관장하는 고위공직자도 학생 시절의 에피소드를 나누며 추억에 젖고 때로는 위안을 얻을 것이다.
이제는 귀가 잘 안 들려 학생들의 말을 잘 못 듣는 바람에 실수를 많이 한다고 하시며 “올해까지만 일하고 그만 둬야지” 라는 말씀에 괜한 섭섭함이 들었다. 그러지 마시고 더 오래 계시라고 말씀을 드리면서도 삼십 년 만에 만난 아저씨를 과연 내년에도 뵐 수 있을까? 하는 물음과 함께 가슴 깊이 울리는 아픔을 느꼈다.
구두를 닦고 나오며 정해진 가격보다 조금 더 드렸다. 내가 할 수 있는 배려란 기껏해야 이 정도일 것이지만 앞으로 모교를 떠올릴 때면 의례 아저씨의 주름 깊은 미소가 소중하게 기억될 것이니 아저씨께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셈이다. 생각해보면 과연 내가 지금의 자리에 그저 성실하게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른 이들에게 위안과 힘이 되어줄 수 있을까? 참으로 자신이 없다. 밝은 햇살 속 캠퍼스 한쪽 구석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에 대한 기억만으로도 당분간 살아가는 힘을 얻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 지닌 시간의 힘이 비범한 지혜로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삶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김영호
삼성서울병원 치과진료부 교정과장
성균관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