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trum] 템포 깎던 수련의

  • 등록 2012.08.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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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trum

 

템포 깎던 수련의


벌써 40여 년 전 일이다. 내가 갓 세간난 지 얼마 안 돼서 물금에 내려가 살 때다. 부산 왔다 가는 길에, 범어리로 가기 위해 남양산에서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남양산 맞은편 길가에 병원에서 템포를 깎아 파는 수련의가 있었다. 마침 제1대구치를 발치한 지 2달이 지나 브릿지를 하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얼마 쓰지도 않을 템포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템포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서 하시우.”


대단히 무뚝뚝한 수련의였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이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타야 할 셔틀버스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굳을 만큼 굳어야 레진이 되지, 파우더가 재촉한다고 레진이 되나.”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이 선생, 외고집이시구먼. 차시간이 없다니까요.” 수련의는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기공실에 가져가서는 lathe에 twinkle까지 하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템포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끼워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템포다.


차를 놓치고 콜택시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진료를 해 가지고 수입이 날 턱이 없다. 환자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수련의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수련의는 태연히 허리를 펴고 신환 파노라마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의사다워 보였다. 떡진 머리와 면도 안한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수련의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집에 와서 템포를 보였더니 아내는 예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자기 입에 있는 금니만큼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내의 금니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교합면이 너무 밋밋하면 음식을 먹다가 씹기가 덜 하며 같은 고기를 먹더라도 힘이 들며, 교합면이 너무 부르면 측방운동 시 간섭이 생기며 익관절 장애가 생기기 쉽단다. 요렇게 마진까지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수련의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치과에 갔다 왔단다. 전에 앞니 뒷니를 깎아서 브릿지를 했던 생각이 난다. 브릿지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임플란트 때문에 브릿지 프렙하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만호도의성(萬戶衣聲)이니 위군추야도의성(爲君秋夜衣聲)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0년 전 템포 깎던 수련의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 내용은 윤오영 작가님의 방망이 깎던 노인을 패러디한 글입니다. 외래에 갓 올라온 3학년 원내생 실습생으로부터 자주 받던 질문 중 하나가 “보철과에서는 임시 치아를 깎는데 왜 시간이 오래 걸리나요?” 였습니다. 이에 우리끼리 웃고 놀자는 뜻으로 만들었던 글을 수련의 마지막 해에 돌이켜 읽어 보니, 1년차 시절 환자의 불편감은 아랑곳 않고 자기 만족을 위해 2시간이고 한 환자를 붙잡고 있었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 햇병아리 치과의사이고 앞으로 많은 현실의 난관에 부딪히겠지만, 마음 한켠엔 방망이를 깎던 노인을 앉혀 두고 이따금 돌이켜 보고 싶습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 재 영
부산대치과병원 보철과 레지던트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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