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에서의 하룻밤(4) 함평 모평마을 (21면)

  • 등록 2012.08.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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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자는 천석군 선비였던 윤상용선생이 조선말기에 건립했다고 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을 얹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아주 검박해 보이는 정자는 친근감을 갖게 한다.


조선말 의병을 모아 일제에 대항했던 면암 최익현선생이 대마도에 끌려가기 전 해인 1905년에 쓴 ‘영양재기’, 윤우선의 ‘차운’, 기우만의 ‘영양재상량문’(1902)에 영양재와 관련된 기록이 있다. 호남의 여느 정자처럼 영양재는 웅장하지 않고 검박하다. 외형을 보여주기 위해 드러내지 않고 내면을 추스르는 호남의 유림정신을 닮아 있다. 그 정신은 영양재에 걸려 있는 주련에 잘 나타나 있다.
        
非禮勿視(비례물시) 非禮勿言(비례물언)
非禮勿聽(비례물청) 非禮勿動(비례물동)
“예가 아닌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하지도 말라.”

  

 윤상용 선생은 천석군이었다는 행적 이외에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마을에 생존해 있는 윤석율 선생(77세)에 따르면 그의 아들이 윤씨문중에 토지 30마지기를 내어 공용하도록 했다는 전언이 있을 뿐이다. 아마도 관직에 나가지 않고 안빈낙도를 향유하며 대대로 물러받은 부를 지키다가 대물림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영양재는 예전에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관리하기 어려웠는데 최근 이 마을에 이사 온 젊은 임선희(43세)씨가 찻집으로 활용하고 있어 새롭게 태어난 듯하다. 


하지만 윤씨가문은 윤상용 선생처럼 초야에 묻혀 살지도 않았다. 1855년(철종 6)에는 윤자화 선생(1825∼1884)이 과거에 급제하여 이조정랑 겸 문학(吏曹正郞兼文學),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거쳐 대사헌(大司憲)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역시 부모가 돌아가시자 고향에다 정자를 짓고 3년 상을 치르기도 했다. 그는 낙향하여 자신의 호를 귀령재(歸穎齋)라 바꾸고 산수(山水)와 벗하며 지냈다. 윤씨가문의 효심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영양재에서 함평읍 방향으로 몇 걸음 옮기면 파평 윤씨 제실인 임천정사(林泉精舍)가 보인다. 이 건물은 이 지역 7개마을이 공동으로 출자해 만든 주자서원과 함께 지역의 사교육을 담당했던 사원이었다. 하지만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모두 폐쇄된다.


파평윤씨 가문은 이처럼 함평지역에서 끊임없이 유학을 익혀 조정에 나가고, 때로는 왕비를 배출해 명문가의 위세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권력의 무상함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게 되었고 지금은 한적한 시골의 마을로 남았다.


모평마을의 자랑은 안샘이다. 나이가 족히 1000년도 넘는다. 과거 관아의 우물로 사용됐던 안샘(천년샘)은 임천산 왕대숲에서 흘러나온 우물이다. 차중의 으뜸이라는 수백 년 된 야생 죽로차 밭이 있는 곳에서 나온 안샘은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우물로 차를 달여 마시면 차맛이 일품이란다. 안샘 옆 한옥민박집 모평헌(牟平軒)은 안샘의 유명세를 타고 민박집으로 인기가 높다.  모평헌은 100여년 년 전, 현재 집주인의 고조부가 바닷물에 소나무를 7년간 담갔다 건져 15년을 건조 시킨 후에 지은 집이란다.


마을 어느곳에 머물러도 시간은 100년 넘게 거슬러 올라간 듯한 착각에 빠진다. 조선시대의 어느 양반촌을 거닐고 있는 느낌이다. 어느 대문을 두드리며 “이리 오너라”하고 외치면 “예, 나으리”하고 얼른 하인들이 나올 듯하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 독자 여러분들도 시간의 타임머신을 고정시키고 함평 모평마을로 가서 도시생활의 묵은 때를 녹여보시길 권한다.

  

여태동 / 고택칼럼니스트

  


#하룻밤 정보
모평마을은 하룻밤 머물기가 아주 좋다. 모평헌, 소풍가, 모수원, 영화황토민박, 풍경소리, 물레방아 민박, 희소문 등 한옥민박집이 즐비하다. 평권역 홈페이지(
www.mopyeong.com)를 통해 미리 살펴보고 이명숙 사무장(010-4704-0977)을 통해 예약하면 된다. 보평권역(061-323-8288)으로 전화해 숙박정보를 알아봐도 된다.   

  

#주변 볼거리
함평은 나비축제가 유명하다. 하지만 이 축제는 5월이 성수기라 때를 맞춰야 가능하다. 8월초인 요즘 모평마을을 방문한다면 돌머리 해수욕장에 들러보길 권한다. 여기에서는 함평 지역에서 나는 유황석과 약초를 섞어 소나무 장작으로 가열한 후, 그 돌을 해수탕에 넣어 데운 물로 찜질하는 해수찜이 유명하다. 9월에서 10월에 방문한다면 인근의 용천사 꽃무릎을 구경가길 권한다. 사찰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의 향연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찾아가는 길
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함평IC에서 빠지거나 경부고속도로와 천안-논산고속도로를 거쳐 호남고속도로 장성 장성IC에서 해보면 방면으로 가다가 모평마을 이정표를 찾아 들어오면 된다. 네비게이션 주소를 찍을 때는 함평군 해보면 상곡리로 하면 모평마을이 나온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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