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trum
페르시아 전쟁
김 진 구
연세오슬로치과의원 원장
영화 ‘300’은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가 300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백만이 넘는 페르시아 대군에 맞서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전원이 장렬하게 전사하는 내용으로, 국내외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BC 480년 테르모필라이 협곡에서 실제 있었던 이 전투는, 당시 세계정복을 목전에 둔 인류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제국인 페르시아 제국이,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도시국가들을 정복해서 세계 통일을 눈 앞에 둔 시점에서 발생한다.
이 영화에서 페르시아 제국의 왕인 크세르크세스는 ‘온몸에 피어싱을 한 여성스러운 중동인’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너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현실인식이 부족하고 ‘지나치게 관대하다가도 지나치게 잔인한 이방인 왕’이다. 그리고 스파르타의 자치를 파괴하고 굴종을 강요하는 강력한 적으로, 서양 문명을 모두 파괴하려 하다가, 비참한 패배를 하고 돌아가게 된다. 현재의 서양문명이 그리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그 후손들에 의해서 쓰여진 역사의 관점에서는 어쩌면 이러한 묘사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페르시아 전쟁은 극악한 페르시아 군대에 맞서 싸운 선한 그리스 연합군 전쟁이라고 보기 힘들고, 크세르크세스 왕도 영화에서 표현된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인물이다.
페르시아 대제국을 건설한 위대한 정복왕 ‘다리우스’의 차남으로 태어난 크세르크세스는 어렸을때부터 철저하고 엄격한 교육과정을 통해 제왕학을 공부하였고, 여러 아들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능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장남을 제치고 왕위에 올랐다. BC 486년 이집트의 반란을 토벌하기 위해 친정했던 다리우스 대왕이 병사하자 자연스럽게 왕위에 오른 크세르크세는 아버지의 원연을 잊지 않고 이집트 정복을 속히 마무리 지었고, 아버지가 한번 실패했던 아테네 정복을 위한 준비도 철저하게 시작하였다.
아버지 다리우스 대왕은 거대한 제국을 철저한 관료제를 정착시켜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한편, 중앙집권이 어려운 지역에서는 참주제를 통해 일정수준의 자치를 보장하였다. 거대제국은 부당한 요구를 하지도 않았고, 대제국의 부와 최신 문물을 나누어 주면서도, 우정과 존경을 나타내는 최소한의 공물만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그리스의 도시국가들 중 일부는 대왕의 군대가 정복한 지역을 빼앗을 목적으로, 또는 각 도시국가들 사이의 분쟁과정 중에 페르시아 제국에 스스로 반란을 일으켰다. 심지어 에게해 건너 대왕의 중요영토인 사르디스를 기습적으로 공격하고 도시를 파괴하기도 하였다.
BC 490년, 분노한 대왕은 2만5천의 정예병력에게 아테네를 정복하도록 했다. 그러나 저 유명한 마라톤평원의 전투에서 밀티아데스가 이끄는 아테네가 승리하며 그리스는 침략자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게 되었다.
다리우스에 이어 왕위에 오른 크세르크세스는 철저한 준비를 끝낸 BC 480년, 200만 병력을 이끌고 거대한 다리를 놓아 헬레스폰토스 해협을 건너 그리스로 공격해 들어간다. 여기에 맞선 그리스 도시국가 연합의 총사령관은 스파르타의 2명의 왕중의 한명인 레오니다스 였다.
레오니다스는 정치적으로 끝장난 자신의 형제를 살해한 의혹을 받고 있기도 했으며, 부자 아내와 정략 결혼하여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용맹하고 결단력이 있었으며, 강한 적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인물이었다. 레오니다스는 그리스 연합 육군의 전략적인 전투를 위해서, 300명의 근위병사만을 가지고 테르모필라이 협곡에서 왕의 육군과 맞서서 일주일간을 버텨냈다. 하지만 결국에 300명의 결사대를 포함한 1500명의 그리스군사와 함께, 협곡에서 왕의 군대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레오니다스를 죽이고 아테네를 정복하여 아크로폴리스를 불태운 크세르크세스는 남은 반란군을 처치하기 위해서 살라미스에 모여있는 적군을 향해 진군하였다. 그러나 그 살라미스 해전에서 대왕의 함대는 그리스 연합군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게 되고, 대왕은 부하에게 전역(戰域)을 맡기고 거대한 제국으로 쓸쓸히 되돌아 간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지만, 만약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가 승리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당수의 역사가들은 크세르크세스는 그리스의 문명을 모두 파괴하는 것보다는, 거대한 제국의 새로운 일원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레오니다스는 역사를 거스르려 하던 무모한 도전자로 기록되었을 것이고, 크세르크세스는 명예로운 정복왕으로 동서양의 모든 역사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백여년 후, 알렉산더 대왕은 그리스와 페르시아를 모두 무력으로 정복하였고, 역사상 최대의 제국을 만든 왕이자 헬레니즘의 창시자가 되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