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trum] 내 삶을 깨어있게 하는 것

  • 등록 2012.10.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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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trum

내 삶을 깨어있게 하는 것


박 세 호
박세호치과의원 원장

  

지인들이 이따금 내게 묻는다. 연극 그걸 왜하느냐고. 심지어 그거해서 돈 많이 벌었냐는 몰무식한 얘기까지 듣기도 한다. 처음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는 어찌나 허탈하고 기가 막히던지 화가 날 정도였다. 지금은 무슨 거창한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처럼 되어버린 부끄러운 나에게, 오히려 연극이란 늘 생동하는 유기체적 신선함으로 내 삶을 깨어있게 하는 실마리가 되고 있다. 나를 살아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오래전 개원을 하면서 선물로 받은 소사나무 분재가 있었다. 개원초 한시간 가량 환자가 없으면 그야말로 똥줄이 타들어가던 경제적 심리적 압박감에 여유가 없던 때였다. 원목수령이 이백년이 넘는, 눈을 약간 흐리게 뜨고 보면 어느 방천에 여유롭게 흐드러진 것처럼 멋있었다. 그 소사나무는  계절의 오고감을 보여 주었는데, 때론 그 작은 변화들이 서른평 남짓으로 좁아져버린 일상에 무디어져만 가던 내 삶의 촉수에 던지는 푸르디 푸른 충격이었다. 식물도 움직인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깨닫게 된것이었는데 내겐 전율, 그 자체였다. 계절에 맞춰 작은 잎을 틔우고 풍성해졌다가 날이 차지면 잎이 오그라들어 마르고 그렇게 떨어졌다. 떨어진 그 작은 낙엽들이 늦가을이면 진료실 창틀에 수북이 쌓이면, 마침 창밖에 내리는 첫눈과 어울려 늦가을의 애상과 겨울의 우수를 함께 보여주었다. 그렇게 몇 년을 계절의 오고감을 알려주던 소사나무에게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저렇게 작은 나무도 계절에 맞춰 자라고 지는구나하는 생각에 익숙해 질 무렵이었다.  겨울의 한중간 1월에도 잎이 푸르더니 봄엔  잎을 떨꾸고  늦여름에 새잎이 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너무 실내에만 있어서 그런건가 해서 일부러 볕드는 창에도 두고 영양제도 주고 했지만 벌레마저 들어 한쪽 가지 전체가 죽어가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병원 인근 분재원까지 들고 가 보였더니 주인은 자기네 나무에 옮는다고 빨리 들고 나가라고 화를 내며 거들 떠 보지도 않았다. 그러다 그 나무가 죽고 말았다. 바싹 마른 가지에 거무튀튀한 회색빛마저 띠는 그 죽은 나무를 한동안 버릴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른 후 우연히 그 나무를 선물한 분을 만나게 되었다. 아주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철마다 영양제도 주고 물 주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죽어버렸다고. 분갈이를 안 해줘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흙을 새것으로 갈아주어야 한다고. 죽은 흙에 영양제를 주는 건 소용없는 일이라고. 그랬다. 식물도 자기가 뿌리내린 땅의 기운이 다하면 죽는다는 것을. 새로운 흙이 주는 신선함과 영양을 받지 않으면 나무도 계절의 변화에 반응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서서이 죽어간다는 것을.


우리의 삶도 그럴것이다.
숨 막힐 정도로 똑같은 일상의 반복 속에 우리를 계속 방치해둔다면 익숙함을 넘어 서서이 삶의 매너리즘에 마취가 되어 아무런 느낌도 가질수 없고, 어떤 반응도 할 수가 없게 될것이다. 동물에게 움직임이 없다는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문화라느니 예술이라느니 하는 단어를 억지스레 떠올리지 않아도 인간은 현실적 일 외에 다른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상들은 배불리 먹고 나면 그 느낌을 춤으로 그림으로 표현하며 살았다. 생활의 일부가 문화적 이었던 것이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라며 핑계를 대는 순간 우리는 태초의 우리에게서부터 멀어져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불황으로 모두들 움츠리고 있다. 곁을 보지 못하면 인간의 집중력이 가진 시간의 한계를 이길 수 없다. 문화란 비운 머리에 채울 수 있는 사치품도 아니고 몇 번을 별러 겨우 기회를 만드는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도 아니다.


 삶의 긴장감이 심각한 피로가 되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며 그리하여 삶에 더욱 충실할 수도록 해주는 것이다.


가끔씩은 머리통을 비워야 채워도 새롭게 느껴지는 법이다.


지금은 개원초보다는 더 넓어진 용기에 내 현실의 땅이 담겨져 있고 내가 거기 뿌리하고 있다. 연극이란 내 현실의 땅을 갈아엎고 내 삶의 뿌리를 공기에 노출시켜 나를 깨어있게, 언제나 깨어있게 하는 분갈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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