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치아아끼기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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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치아아끼기운동(상임대표 서영수)이 국민의 구강건강 지키기에 앞장서는 바른 치과의사상을 고취시키자는 취지로 본지에 칼럼연재를 시작한다. 월 1회 게재되는 칼럼에서는 자연치아아끼기운동이 말하는 의료인의 근본 자세에서부터 치과계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과 대안이 제시될 예정이다.
김정일과 스티브 잡스
2008년 모 월간지 기자가 유명한 역술인을 찾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운명을 취재했다. 각종 사진 자료와 사주 등을 건네 받은 역술인은 “이런 의뢰가 제일 싫습니다. 맞춰봐야 본전이고 또 못 맞추면 욕만 먹고… 어쨌든 여기까지 오셨으니 어디 한번 보기나 합시다”라며 기자가 준 자료들을 건네 받더니 죽 살펴본 후 대뜸 “2011년에 죽습니다. 확실합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놀란 기자가 다시 물었으나 “확실해요. 기사에 내 이름을 올려도 좋습니다”라고 했다. 당연히 기사화 됐으나 2008년도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사망후인 2012년 다시 재조명 받으면서 큰 이슈가 됐으며 무엇보다 사람의 운명을 정확하게 예측한 역술인은 엄청난 명예와 부를 거머쥐었음은 물론이다.
우리 치과계에서도 종종 이런 신통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 치아는 3년밖에 쓰지 못할게 분명하다. OOOO을 해야 한다”등의 이야기들 말이다. 필자는 아무리 해도 도무지 치아의 수명을 예측하기란 불가능하고 오히려 예후가 나쁠 것 같은 치아가 예상을 비웃듯이 오래 유지되는 경우를 더 많이 보았다. 만약 의사가 신체 기관의 수명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면 이는 인류 의학의 혁명적인 발전이며 무병 장수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지하의 히포크라테스가 놀라 벌떡 일어날 일 아닌가? 그것도 모자라 “얼마 쓰지 못할 테니 내가 싼 가격에 다른 치료를 해 주겠다”는 제안을 하는 경우도 있다니 이것이야 말로 노벨 의학상을 넘어 노벨 평화상도 부족한 인류애의 실천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어디서도 이런 신통한 능력을 가진 치과의사가 주변 치과의사와 환자들에게 존경을 받으며 부와 명예를 누린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고 노벨상은 고사하고 그 어떤 단체로부터 공로상이라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는 것은 비단 필자 뿐일까?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195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위스콘신 대학교의 대학원생 커플이었던 시리아 출신의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의 반대로 대학원생 미혼모였던 그의 생모는 잡스를 입양시켜야만 했다. 세계 IT시장을 뒤 흔든 천재 스티브 잡스는 ‘원치 않는 아기(unwanted baby)’였던 것이다. ‘원치 않는 아기’에 대한 반응은 동서를 막론하고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처음부터 없었으면 좋았을 걸, 지금이라도 없어지면 모두가 행복할텐데, 제발 좀 사라졌으면… 최근 치과계에도 이런 ‘원치 않는 아기’ 신드롬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자연치아’이다. 치과의사 입장에서 돈도 안되고 치료하기 골치 아픈 치아는 바로 ‘원치 않는 아기’일 것이다. 그것만 없으면 복잡하고 골치아픈 치료로부터 해방될 수 있고 또 무엇보다 환자의 고통을 한 번에 해결하는 방법으로써 ‘원치 않는 아기’를 없애는 것만한 것이 없었기에 오늘도 많은 자연치아들은 ‘원치 않는 아기’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까지 치과의사와 환자 모두가 그러기를 원했고 그렇게 잘 지내왔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원치 않는 아기’의 부모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미우나 고우나 내 자식이라며, 오래 살아 보니 내 자식(자연 치아) 만한 게 없더라며 ‘원치 않는 아기’를 살리기 위해 비용과 시간을 감수하기 시작했다. 특이한 것은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환자일수록 이런 요구를 강력하게 한다는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럴수록 기본과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먹고 살만 한가? 스티브 잡스 한명에게 몰락 당한 노키아를 보라. 시간이 없다. 승자 독식의 생태계는 승리자에게 모든 것을 안겨 준다. 자 이제 ‘원치 않는 아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용훈
분당 서울대병원 치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