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trum
다문화 홍수 속 의료계
요즘 공공장소나 대중교통 이용 시 여행객이 아닌 외국인들이 부쩍 많아진 것을 체감할 수 있다. 글로벌 경제의 힘은 단일민족을 강조해오던 한국 사회에 ‘다문화’라는 새로운 언어를 등장하게 만들었고, 이제 한국 사회에서 민족, 언어, 인종의 다름을 이유로 차별과 거리낌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에는 어지간한 용기가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의료기관을 찾는 외국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병원에 오는 외국인들을 종종 보면서 우리나라가 정말 다문화사회가 되어가고 있구나하고 생각하지만 막상 이 사회에서 그들의 위치와 현실, 또 나의 역할과 입장까지도 너무나 막연하다는 느낌에 뭔가 모를 답답함을 느낀 적이 있었다. 물론 치료 자체는 인종이나 사회적 위치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것이 아니고, 의사소통의 문제는 어려운 문제지만 복잡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지금 외국인 환자를 만나는 것은 그렇게 부담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래에 이런 환자들이 나의 클리닉을 찾는다면 나의 마음이 조금 더 무거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 대해, 그리고 그들과 공존하고 있는 나의 현실에 대해 ‘잘모른다’ 는 이유로….
의료보장이나 사회심리적 상태 등 복잡한 문제들이 분명 존재한다. 해결하기 어렵거나 해결할 필요가 없는 문제들 일 수 있지만 다문화사회의 의료인으로서, 또 그에 앞서 다문화 사회의 일원으로서 몇 가지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 첫 번째는 ‘다문화’라는 언어가 식상한 만큼, 그 지향하는 바 역시 모호하다는 점이다. 다문화를 포용한다라는 표현이 많이 쓰이고, 정부의 정책과 법률, 심지어 TV 광고에서는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이 함께 뛰어 놀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상상이 넘쳐 흐르지만, 일상에서 다문화라는 말은 대부분 ‘다른’ 인구집단을 지칭하는데 국한된다. 포용과 관용이라는 세련된 외향을 하고 있지만 정작 그들의 위치에서 무엇이 다르며, 무엇이 다르게 대우돼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무감각하다. 필리핀 여성이 된장국을 끓이는 것을 배우고, 아이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미덕으로 여겨지지만, 그 아이들이 어머니의 모국어와 관습을 긍정적으로 경험하게 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다. 지금의 ‘다’문화는 다른 문화의 사람들이 한국의 문화라는 ‘하나의’ 문화에 통합되도록 하는 힘으로 작동하고 있을 뿐, 다름과 차이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기존의 감수성과 기준을 바꾸는 방식으로는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두 번째는 한국 국민으로서 누리는 권리와 사회적 지원을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점이다. 다문화를 단순히 문화가 아닌 복지와 권리에 대한 분배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은 단순히 관용의 태도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이들에 대한 의료비 지원 등, 복지제도의 확대는 또 다른 한국 사회의 집단들과의 분배의 문제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외국인 환자들에게 의료보장을 확대한다는 것은, 마찬가지의 복지를 필요로 하는 빈곤 고령인구나 실업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일종의 역차별로 받아들여 질 수도 있다. 다문화는 단순히 특정 환자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의료 체계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그것이 한국 사회의 다양한 집단들간의 갈등과 복지 보장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와 결부된 중요한 이슈이다. 현실에서 이러한 논의는 아직 먼 이야기인 것 같지만 우리 안의 차이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또 얼마나 열린 감수성으로 편견없이 진료에 임하고 있는지 돌이켜 보는 것은 (너무 무관심했던 적어도 나의)마음의 짐을 더는데 있어 중요한 시작일 것 같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 은 강
부산대학교치과병원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