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설악회 친선 단합대회 - 하조대, 휴휴암과 아바이 마을의 추억 (하)

  • 등록 2012.10.2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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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설악회 친선 단합대회
하조대, 휴휴암과 아바이 마을의 추억 (하)


<2076호에 이어 계속>


6. 휴휴암(休休庵) - 하조대 조금 지나서 7번 국도로 내려가다가 죽도암에서 남쪽 1km 정도가면 왼쪽 바닷가쪽으로 암자가 보인다. 1997년 법당 모적전 하나로 시작한 휴휴암은 온갖 번민을 바다에 떨궈 버리고 쉬고 또 쉬어가라는 뜻에서 절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또 바닷가에는 거북모양의 바위와 사람 얼굴 모양의 바위를 볼 수 있으며 산 밑의 바위를 뚫어 깊숙이 10m 정도 굴속에 부처를 모시고 있다. 그 입구에는 화천수불 보살세계란 글씨도 쓰여져 있다. 또 바닷가에는 관세음보살(여자)이 누워 있는 듯한 바위가 있어 많은 불교신자들과 일반 시민들이 모여들며 새로운 명소가 되었다. 또 물고기 방생도 하고 과자 등 1봉지 2000원을 주고 사면 웅덩이에서 사는 고기들이 까맣게 모여든다. 정말 우리는 신기한 관경을 보았다. 바닷가에는 큰 범종도 있었다. 정자에서 보면 푸른 동해바다, 기암기석, 암석 사이의 소나무 등 정말 아름답고 멋진 곳이기도 하였다.

  

7. 아바이 마을 - 1950년 6·25 전쟁이 터지면서 함경도 사람(아바이=할아버지=아버지의 함경도 방언)들이 1·4후퇴시(서울철수) 남한에 피난 나와서 고향에는 못가고 한곳에 모여서 살던 조그마한 어촌 마을을 말한다. 지금도 약 60% 이상이 함경도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행정 명칭은 청호동이다. 인기 드라마 ‘가을동화’ 촬영 장소이기도 하였다. 중앙동과 청호동을 왕래하는 ‘갯배’는 지금도 운행하고 있다. 즉 나무 사각형 형태로 만든 배에 사람이 타고 로프로 끌어 당긴다. 약 50~60m 바닷길이다. 중앙동에서 아바이마을 건너 가려면 우측은 청초호, 좌측은 항구 입구이며 동해바다로 나갈 수 있다.


함경도 아바이들의 유명한 먹거리는 가자미식혜, 오징어순대, 명태순대, 함흥냉면 등은 반드시 먹어 볼만하며 속초에 가면 나는 꼭 아바이 마을에 들르곤 한다. 나도 함남 북청에서 피난나와서 10대 초반 어릴때 아바이 마을에서 잠깐 살았던 적이 있었다. 옛것들이 그립고 고생하면서 한편 아름다운 추억이 떠올랐다.


아바이 마을 (주로 북청사람)이 생긴 것은 피난 방법의 하나인 LST의 흥남부두 철수와 마을 단위의 돛단풍선배 등 크게 두가지 방법으로 피난 나왔다. 나는 후자로 피난 나왔다. 1950. 6. 25. 04시 북한군이 남침으로 인해 우리는 낙동강까지 밀려서 후퇴했다. 미군의 지원하에 낙동간 전투는 승리하여 연합군과 국군은 북진을 계속하였다. 압록강, 두만강까지 북진했는데 중공군이 불법으로 한국전에 개입하여 전세가 역전되어 우리는 불리해져서 후퇴하게 되었다. 장진호 전투에서 미국 제1해병사단과 12만명의 중공군과 치열한 전투 속에서 미군은 포위망을 뚫고 겨우 흥남부두에 도착 하였다.


그때 미 제10군단과 국군 제1군단은 흥남항에서 피난민을 선박편을 이용하여 안전하게 철수시켰다.(1950. 12. 15~ 24. 10간) 그때 흥남항에는 10만이 넘는 시민이 운집했다고 한다. 그때 미 10군단 고문 현봉학, 10군단장 에드워드 알모르 장군, 미 상선 머레디스 빅토리호 레너드 라루 선장 3분의 결단으로 LST에 피난민 1만4000명을 승선시켰고 그때 그 배에서 5명의 새 생명이 탄생하기도 했다. 그 배는 거제도에 가서 피난민을 내려 놓았다. (기네스북에 등재) 참고로 철수 작전은 군인 10만명, 민간인 10만명, 차량 1만7000여대 35만톤의 군수품을 안전하게 철수시켰다.


미국 등 참전국이 16개 나라, 지원국이 51개 나라였다. 당시 유행했던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는 흥남부두에서 피난 떠나는 아버지가 부둣가에서 헤매던 딸과의 뼈아픈 이별의 슬픔을 말한 노래였다. 가사는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였더냐, 피눈물을 흘리며 1. 4(서울철수)이후 나홀로 왔다.”


나는 부모형제를 북청에 두고 홀로 네분의 4촌 형들과 피난 나왔다. 다시는 이런 가슴 아프고 뼈저린 일들이 없길 바란다. 우리 모두 몸과 마음을 합쳐서 하나가 되는 날을 기대하면서….


최 광 철
전 서울의장·전 치협 부의장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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