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관기
제48차 ISO/TC 106 (하)
자국 경제적 이익 수호 ‘치열’
여러 SC중에서 필자가 한국 대표로서 활동하고 있는 분야는 SC 7 Oral care products이다. SC 7에서는 수동칫솔(WG 1), 전동칫솔(WG 2), 구강양치액(WG 3), 치약(WG 4), 치간칫솔(WG 5), 치실(WG 6), 치아미백제(WG 7), 불소바니쉬(WG 8), 의치접착제(WG 9) 등 총 9개의 작업반이 있다.
올해에 SC 7에서 논의된 이슈들 중에서 인상적인 내용은 전동 칫솔의 교체용 헤드의 유지력(retention)에 대한 현행 규정을 상향 조정하는 문제였다. 현재는 전동칫솔의 헤드 부위가 15 N의 힘으로 당겨도 견디는 수준을 국제 규격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독일 측에서 현행 기준을 유럽의 장난감 규격에 준하는 90 N으로 상향조정하는 안을 제시했다. 왜냐하면 전동칫솔의 헤드 부분을 어린이들이 이를 닦는 중에 치아로 물어뜯는 경우가 많으며, 그러다가 헤드 부분이 파손될 경우 연조직이 손상될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상향 조정된 기준의 근거로써 독일측에서는 어린이들이 실제로 우유병을 빨때 나타나는 힘을 측정한 연구결과를 제시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5세 아동의 경우 상위 95%에 속하는 일부 어린이의 경우 우유병을 빠는 힘이 무려 82 N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에서 새롭게 제시한 90 N이라는 기준에 근거해서 시중 유통되는 전동칫솔들을 평가해본 결과, 절반 이상의 제품이 이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자 미국측에서는 이러한 독일 측의 새로운 제안에 반대하면서 기준 상향 조정에 대한 논의를 좀 더 지속할 것을 요청하였다. 아마도 미국측에서는 90 N이라는 새로운 기준이 국제 표준으로 제정될 경우 상당 수의 자국 제품들이 이 기준을 통과하지 못할 것을 우려한 반응이 아니었나 생각되었다. 이렇듯 ISO에서는 각국의 대표들이 자국의 기업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자국 이익 보호 활동은 올해 최초로 열린 SC 10 CAD/CAM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났다. 올해 SC 10에서는 일본, 미국, 유럽의 대표자들이 자국의 첨예한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논의를 진행하였다.
사실 ISO에서는 세계 각국의 대표들이 자국 회사들의 경제적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서 그 최첨단에 있는 국제 표준 제정 과정에 자국의 의사를 적극 반영하려 하고 있다. 그러므로 미국치과의사협회와 일본치과재료협회에서는 매년 수십명의 자국 대표를 파견해서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애쓰고 있다. 그래서 ISO/TC 106에서 현재 활동하고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민간기업에 소속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까지도 민간기업보다는 치과 대학교수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지난 5년간 “구강관리용품 표준화 포럼”을 개최하면서 ISO에서 논의된 사항을 국내 기업들에게 전달하고, 국내 구강관리용품의 표준화를 향상시키기 위한 활동을 해왔다. 그 와중에 느낀 점은 국내 기업들의 대부분은 국제 표준 제정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보다는 이미 제정된 표준을 따라하는 정도에 만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국내 실정과는 다르게 일본의 경우는 ISO활동에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일본의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과거 뼈아픈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1970~80년대 비디오 테이프를 사용해본 분들 중에서는 소니의 베타 비디어 테이프를 기억하는 분이 있을 것이다. 소니의 베타방식은 미국의 빅터에서 개발된 VHS방식에 비해서 크기도 작고 성능도 우수하였다. 하지만 빅터는 자사의 떨어지는 기술수준을 극복하기 위해서 국제표준우위점유라는 전략을 통해서 기술우위의 소니를 누르고 마침내 전 세계 비디오테이프 시장을 통일했다. 비록 소니 베타방식이 기술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우월했지만, 이후 국제 표준에서 밀려났기 때문에 시장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이후 일본에서는 국제표준의 중요성을 깨닫고, 국가뿐만 아니라 기업들 역시 국제 표준화기구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최근 우리나라의 선두 기업들 역시 국제 표준의 중요성을 깨닫고 과거처럼 “Fast follower”전략에서 벗어나 “First mover”로 변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치과관련 기업 역시 과거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ISO회의에 참가하는 것이 요구된다.
2013년도는 ISO/TC 106 한국지부에서 의미있는 한해가 될 전망이다. 왜냐하면 9/29~10/5에 제49차 ISO/TC 106회의가 최초로 한국에서 개최되기 때문이다. 내년 ISO/TC 106회의에는 보다 많은 한국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우리나라의 국익이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의미있는 회의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김백일
연세치대 예방치과학교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