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y Essay
제1785번째
작은여행
우리나라의 가을 하늘은 참 아름답다. 가을은 하늘 뿐 아니라 모든 곳이 다 아름답다. 아름다운 가을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아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그 아름다운 가을날 여행이 목적이 아닌 일을 보러 가는 여행을 했다. 같은 곳을 가더라도 여행이라 생각하며 갈 때와 어떤 일로, 의무감으로 갈 때의 느낌은 전혀 다를 것이다. 무겁고 딱딱한 여행을 즐거운 여행으로 하고 싶었다.
멀리까지 가야하는 일정이었지만 나를 위한 틈을 만들기로 했다. 조금 더 일찍 출발하여 가는 길 중간쯤에 여행을 즐기기 위한 것을 만들었다. 중간 지점 어느 지방의 5일장 하는 장터를 찾아 그곳을 즐기기로 했다.
경북 상주 중앙시장에서 매달 2, 7일이 들어가는 날 5일장이 열린다고 한다. 10월 2일, 딱이다. 5일장은 대개 기존의 시장이 있는 곳 빈자리에 농사지은 작은 보따리들 들고 나와 좌판을 벌이는 모습이다. 장사하러 나왔겠지만 표정들은 장사보다는 옆 자리의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웃고 떠드는 재미가 더 커 보인다. 연세 드신 아주머니들 혼자 들고 나와 판 벌일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보따리들이 대부분이다. 그 작은 보따리 앞에 풀어놓고는 옆의 아주머니와 이야기 보따리를 더 크게 푼다. 소박한 즐거움과 행복의 표정들이다.
작은 보따리 앞에서도 흥정이 벌어진다. 5백원, 천원을 더 받고 싶어서… 어떤 이는 5백원, 천원을 더 깎고 싶어서….
시장 이곳저곳 구경을 하다 보니 장터 국밥집이 보인다. 그제서야 시장기가 느껴진다. 새벽 일찍 출발해서 이곳까지 왔으니 배가 고플 만도하다. 국밥집의 모습은 밖에서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간다. 가마솥에서 나오는 구수한 냄새며 좌판에 수북이 쌓여있는 온갖 종류의 고기들이며, 식욕을 자극한다.
선지국밥에 여러 부위의 고기들 한 접시를 시켜 정말 맛있게 먹는다. 아침 식사로는 매우 거하게 먹는다. 옆자리의 아저씨들은 아침부터 소주 한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반가운 대화들이 오간다. 사람 사는 모습이 보인다.
식사 마치고 나오니 햇살이 따뜻하게 비친다. 배부르고 등 따뜻해지니 세상 부러울 게 없더라….
이왕 장터에 왔으니 이것도 조금 사고 저것도 조금 사고… 주머니에서 천원짜리 지폐가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꼬깃꼬깃 구겨진 모습이 된다. 작은 즐거움이 느껴진다.
“아주머니~ 대박에서 그렇게 싹 밀어내면 어떻게 해요~ 옆에 조금은 남겨 주셔야지~^^” 찹쌀 2대박을 살 때 모습이다.
가을이 자리 잡아 가기 시작한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점점 깊어진다. 가을은 축복 받은 계절이다. 봄, 여름 내내 농사지은 곡식과 과일들이 무르익어 수확을 할 수 있게 하여주고, 산과 들이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을 때이고, 하늘이 높아지며 사람들의 마음을 살찔 수 있게 해주는 계절이다. 축복의 가을을 함께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나의 삶도 10월쯤의 계절을 보내고 있을까. 조금은 더 편안한 마음과 더 비워진 마음으로 살려하는 내가 되어야 할 텐데….
소박한 장터 구경 잘 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눈과 가슴에 가득 담으며 어렵고 힘든 일 잘 마치고 돌아왔다.
너무도 아름다운 가을이다. 이 파란 가을 하늘 아래의 불쌍한 백성들, 정치놀음에 정신이 없다. 여자건 남자건, 잘난 사람이건 못난 사람이건 저마다 잘난 척 하느라 가을 하늘을 볼 줄도 모른다. 불쌍하다.
※ 치과의사 계영청의 세상사는 이야기(http://www.densta.com)에서
계영청
서초구 계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