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문회 김유정(金裕貞) 문화촌 기행(상) - 동백꽃은 생강나무 노란 꽃

  • 등록 2012.11.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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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치문회 김유정(金裕貞) 문화촌 기행(상)


동백꽃은  생강나무 노란 꽃


눈을 뜨고 일어나 보니 새벽 6시경이였다. 창문 밖으로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치문회에서 문학기행을 가는 날인데 걱정이 되었다. 비가오면 참가 회원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치문회(회장 정재영)는 10월 모임에서 11.11(일)에 회원 단합 대회를 가지기로 하고 나의 임무는 버스 대절과 코스 선정을 맡아 준비해 놓았다. 당초에는 20여명이 가기로 되어있는데 비도 오고 이런저런 일로 다 빠지고 9명이 다녀왔다. (김영훈, 황규선, 정재영, 박승오, 변영남, 박용호, 윤양하, 이원유, 최광철).


우리는 압구정동 현대백화점에서 춘천을 향해 출발했다. 빗길에 천천히 마이크로 버스(25인승)는 질주했다. 가평휴게소에서 우동 등 간식을 먹고 버스를 타고 떠났다. 춘천역 두 정거장 못가서 김유정역 근방 김유정 문화촌에 도착했다. 비는 계속 오고 있었다. 우리는 우산을 받쳐쓰고 문화촌 입구에 들어서니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닭싸움의 장면을 그린 동상이 첫눈에 들어왔다. 두 남자는 각각 자기의 닭을 응원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기념 전시관으로 들어가는 우측에 동백나무가 몇그루 있었다. “김유정의 동백꽃은 동백꽃이 아니다?”라고 한다. 그것은 강원도 사람들은 생강나무 꽃을 동백꽃 혹은 산동백이라고 불러왔다.


‘정선 아리랑’의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싸릿골 울동박이 다 떨어진다”의 울동박이 바로 생강나무 노란꽃이나 까만 열매를 의미한다. 또 가요 ‘소양강 처녀’의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 돌아와 주겠다고 맹세하고 떠나셨죠”에 나오는 동백꽃도 생강나무 꽃을 말한다.


김유정 소설의 동백꽃은 우리나라 남쪽 해안에 피는 상록 교목의 붉은색 동백꽃이 아닌 이 생강나무의 꽃을 말한다. 김유정 소설에서 붉은 동백꽃과 구별이라도 하듯이 ‘노랑 동백꽃’이라 표현하고 있다. 당시에 강원도의 동백꽃이 생강나무라는 것을 알턱이 없었을 것인데도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내음새’라고 꽃 냄새를 절묘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기념 전시관 속으로 들어가보니 김유정의 생애, 김유정의 연인들, 작품집들, 사진, 김유정이 짝사랑한 박록주의 판소리 음반과 측음기, 저서 논문, 일정때 나온 담배 희연, 잡지, 사진약력, 저자들, 마지막 편지 ‘필승전’, 홍보영상물을 보고 나오면서 입구에 책 1권씩 사서 가지고 왔다. 그 책은 산골나그네 320쪽의 소설 선집이였다.


※동백꽃 (생강나무) - 산지의 계곡이나 숲속에서 자란다. 꽃은 암수딴그루이고 3월에 잎보다 먼저 꽃이 피는데 노란색의 작은 꽃들이 여러개 뭉쳐 꽃대없이 산형 꽃차례를 이루며 핀다. 열매는 장과이고 둥글며 지름이 7~8mm 크기이며 9월에 검은색으로 익는다.


열매로는 기름을 짠다. 자른 가지에서 생강냄새가 난다 하여 생강나무라 부르고 강원도에서는 산동백, 올동박이라고도 부른다. ‘정선 아리랑’, ‘소양강처녀’에 이 꽃이 나온다.


김유정 소설 ‘동백꽃’은 바로 생강나무 노란 꽃이다.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1. 김유정 소설 선집 ‘산골 나그네’ - 전상국편, 강원대학교 출판부에서 출판했다. 값은 8000원이였다. 차례를 보면 산골나그네, 총각과 맹꽁이, 소낙비, 노다지, 금따는 콩밭, 떡, 만무방, 솥, 봄봄, 안해, 가을, 동백꽃, 따라지, 땡볕, 형, 회화적 감각과 바보 열전… 이재선, 김유정 소설의 언어와 문제… 전상국, 김유정 연보 등 실려있다.


2. 김유정 金裕貞- 춘천시 신동면 증리(실레마을)에서 태어났다.(1908.2~1937. 3)


그는 29세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증리(실례)란 금병산에 둘러싸인 모습이 마치 옴폭한 떡시루와 같다고 하여 붙혀진 이름이다. 떡시루증은 한자로 증甑(기와와 질그릇)이다.


그는 아버지 김춘식과 어머니 청송 심씨의 2남 6녀중 차남(일곱째)으로 태어났다.


유아기에 종로에 이사온 후 7살에 어머니를, 9살에 아버지를 여윈 뒤 부모사랑이 모자라서 한때는 말을 더듬기도 했다고 한다. 서울 연희전문 문과에 압학했으나 2살 연상의 당대 명창 박록주를 열렬히 구애하느라 학교 결석이 잦아 두달만에 제적당했다. 실연과 제적의 상처를 입고 춘천 실례마을에 와서 야학과 농촌계몽 활동을 하기도 했다. 1933년 다시 상경하여 그는 ‘농촌과 도시의 밑바닥 인생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 시작했다. 그 해에 ‘제일선’에 산골나그네, 신여성, 총각과 맹꽁이 등을 발표했다. 1935년 소낙비가 조선일보 신춘문예 현상 모집에 1등에 당선되고 구인회 후기 동인으로 가입한다. 그는 30여편의 단편소설을 남기고 등단이후 폐결핵과 치질이 악회되어 3월 29일 새벽 달빛속에 하얗게 핀 배꽃을 바라보며 삶을 마감한다.


※박록주 朴綠珠 (1906. 2~1979. 5) - 본명 명이(命伊), 경북 선산 출생. 12세 때 박기홍에게 소리를 배우기 시작하고 뒤에 송만갑·정정렬·유성준·김정문 등에게 배웠다. 1937년 창극좌에 입단하였으며, 1945년에는 ‘여성국악동호회’를 조직하여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인 판소리 《춘향가》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가, 1970년 《흥부가》의 예능보유자로 변경, 지정되었다.

  

최광철
전 서울의장·전 치협부의장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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