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에서의 하룻밤 (8) 안동 임청각-15면

  • 등록 2012.12.0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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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년이 되면 주민들에 구휼미 제공
가진자로서 사회적 책임 충실
하룻밤 머물면 “행운 온다”소문


집을 지을 때 어떤 노력이 들어갔는지 알 수 있다.


석주 선생이 태어났다는 방은 입구 바로 좌측에 위치하고 있다. 일명 ‘우물방’이라고 한다. 이 방은 고성 이씨 집안 대대로 큰 인물이 태어난 장소라고 한다. 전해 내려오는 설에 의하면 이 우물 방에서는 세 명의 정승이 나신다고 전해 온다고 한다. 그 중 한명이 본손인 상해임시정부의 국무령이었던 석주 선생이 있고, 다른 한명은 외손인 문헌공 류후로(1798-1876, 조선말엽 좌의정을 지냄)선생이라고 한다.


그 다음 한명은 아직 나오고 있지 않았다고 하니 이 집에서 분명 후세에 훌륭한 정승이 나올 법하다. 방문객들도 혹여 임청각에서 머무신다면 우물물 방에서 하룻밤을 머문다면 큰 행운이 될 것이다. 깜짝 놀랄 일은 이 우물방 방에는 아직도 우물이 있다는 사실이다. 우물을 통해 역사적 전설이 사실로 전해 내려오고 있음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임청각에는 특이한 사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첫째는 20대까지 양자한번 없이 종자종손(宗子宗孫)으로 계승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국권회복운동 와중인 21대에 조카가 양자로 들어가는 운명을 맞았다. 공교롭게도 임청각의 종자종손의 계승이 단절됨과 동시에 우리나라의 국운이 단절되는 비운을 겪었다. 왜였을까. 혹시 일제시대의 아픔을 몸으로 부닥치며 항거했던 석주선생의 운명과 연결돼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둘째는 이 집안의 부는 단절됨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임진왜란 때는 이 집에 명나라 군대가 주둔하기도 했다고 하며 흉년에는 기근에 든 주민들을 구휼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부를 세습할 수 있었던 비책은 전해 내려오는 자료가 없어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명나라 군대의 주둔으로 보아, 당시에는 조정의 상당한 신뢰를 받고 있는 가문으로 평가되며 군자정의 현판을 쓴 장본인이 퇴계 선생인 점으로만 보더라도 당시의 권세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러한 권세는 그냥 후세로 내려오는 것은 아닌 듯하다. 경주 최씨 가문이나 구례 운조루에서 내려오는 전통처럼 임청각 역시 흉년이 되면 주민들에게 구휼미를 나누어주었다고 하니 분명 조선시대에 ‘가진 자로서의 사회적 책임’은 충실히 한 것으로 보인다.


일제는 이상룡 선생의 생가였던 이곳에 정기를 자르는 중앙선 철로를 건설했다. 1931년 중일전쟁을 위해 중앙선 철도를 통해 물자를 수송하고, 조선의 물자를 일본으로 빼돌리려 하는 시기에 이러한 만행이 진행된 것이다. 아마도 석주 선생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와도 맞물려 있으니 일제와 석주 선생은 참으로 악연을 가지고 있은 듯 하다.


일제는 철로를 건설하면서 50여 칸의 행랑채와 부속건물을 철거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임청각은 현재도 위풍당당함을 자랑하고 있고 머지않아 중앙선 철로가 철거돼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이 기대된다. 일제시대 때 고택에 대한 등기를 하지 않아 임청각은 오랫동안 소유권이 다른 이에게 있었다. 현재 이 고택에 머물고 있는 후손인 이항증 선생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제 소유권을 넘겨 받고 있다. 어쩌면 사필귀정의 일이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앞으로도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여태동/고택칼럼니스트

  


#찾아가는 길
어디에서 가든지 우선 안동시내로 들어가야 한다. 승용차는 대게 안동은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한다. 서안동에서 안동시내로 들어가 안동댐 방향으로 가면 고가도로가 나온다. 고가도로 위를 지나지 말고 유턴을 해서 우측으로 돌아 들어가면 임청각이 나온다. 고가도로 위를 지나갔을 때는 좌측에 차에서 내려 철길 쪽을 바라보면 임청각 버스정류소가 보인다. 그 아래로 난 길을 따라가면 임청각이 나온다. 하룻밤을 머무시려면 우선 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예약을 하면 가능하다. 단체로도 40명까지 머물 수 있습니다. 식사여건은 여의치 않아 인근의 향토음식점을 이용하면 된다. (054)853-3455

  

#가볼만한 곳


법흥사지 7층 전탑
안동지역은 전탑이 많기로 유명하다. 이는 석탑을 부재로 많이 사용했던 신라보다 전탑을 부재로 많이 사용했던 고구려의 영향이 이곳까지 끼친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법흥동 임청각 옆에 위치하고 있는 법흥사지 7층전탑은 안동을 대표하는 전탑이다. 통일신라시대때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전탑은 목탑형식을 띠고 있어 석탑이전에 목탑이 먼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1962년 12월 29일에 국보 제16호로 지정됐다.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으로 알려져 있다.


안동댐
안동댐은 국내 최대의 다목적 댐으로 우리나라 경제개발이 한창이었던 1971년 4월에 착공, 1976년 10월에 준공됐다. 높이 83m. 길이 612m. 총저수량 약 12억 5천만톤으로 낙동강 본류를 가로막은 사력(砂礫-모래와 자갈을 쌓아 만듬)댐이다. 낙동강에 처음 등장한 이 댐은 하류 지역의 연례적인 홍수 피해를 줄이고 농·공업용수 및 생활용수를 확보하고 있으며 연간 9억 2600만톤에 달하는 각종 용수를 구미 대구 마산 창원 부산 등지에 공급하고 있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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