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trum] 동네치과 원장이라는 선물

  • 등록 2012.12.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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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치과 원장이라는 선물

 

박 세 호
박세호치과의원 원장


해마다 가을이면 잘 키워 꽃피운 국화 화분 몇 개를 가져다 주시는 할머니가 계신다. 아침에 출근하니 올해도 어김없이 두 개의 국화 화분을 대기실에 놓아 두셨다. 십년 전 쯤 부터 환자로 오신 할머니는 그해부터 가을이면 잘 키워 꽃피운 국화를 가져오셨고 우리는 국화를 가져온 작은 손수레에 과일을 담아 드리거나 병원서 키우는 화초 한 뿌리씩 솎아 가시곤 했다. 올해는 할머니의 닳은 틀니만큼이나 기력이 쇠잔해지신 듯, 한 말씀을 또 하시고 또 하시다 가셨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이젠 미망인이 되신 B과일가게 아주머니께서 오셨다. 수척한 낯빛의 아주머니께선 감사하다며 내 손을 잡으시며 울먹이셨다. 긴 투병 끝에 돌아가신 아저씨는 어깨가 크고 선선한 얼굴로 시장통에 어울리지 않는 미남이셨었다. 시골에 과수원을 가지고 있어 과수 농사를 지어 직접 수확한 과일을 시장에 내다 주면 아주머니께서 파셨다. 그런 아저씨가 긴 투병 끝에 지난주 운명을 달리 하셨다. 점심시간에 틈을 내어 문상을 다녀왔었다. 잘못선 보증에 생긴 빚이 술을 가까이 하게 하신 것이 그리된 것이라고 하셨다. 보증… 몇해 전 맞은 편에 있던 A과일가게 아주머니의 아저씨도 술로 돌아가셨는데 그분도 보증을 잘못 선것이 화근이었다. 두 아주머니들은 시장입구에서 마주보고 장사를 하셨는데, 개업초 마치 시장터주 같던 두 분은 손님을 두고 자주 격한 말로 다투시기도 했는데 그 고함소리가 닫힌 창문으로도 들릴 정도 였다. 가슴 아프게도 두 분 다 같은 이유로 미망인이 되어 지금은 마치 친자매 같다. 먼저 아저씨를 떠나보낸 아주머니는 다리수술을 하고 장사를 그만두시고 거의 매일 맞은편 과일가게에 나와 다정스레 앉아 식사도 하시고 과일도 대신 팔아주시며 소일하고 계시다. 하지만 그 큰 목소리로 다투시던 두 분의 예전 그때가 그리운 건 왜 일까.


점심때가 되어 내가 교의로 있는 초등학교에서 5학년 학생 셋이 찾아왔다. 직업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데 자기들 모둠에서는 치과의사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 것이란다.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았는데 마지막 질문이 걸작이다. “돈은 얼마나 버시나요?”… 송곳니가 올라와 유치가 덜렁거리는 녀석이 물었다. 고작 12살짜리의 눈에도 세상이란 돈이 상당한 역할을 하는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인류애니 희생이니 봉사니 하는 단어만 잔뜩 떠올리던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저 애들 눈에도 치과의사란 돈이란 등식이 알게 모르게 자리했구나 싶어 부끄럽기도 하고 착찹하기도 했다. 덧니난 녀석 유치를 뽑아주고 유펜에서 산 연필 세자루를 선물로 쥐어주며 난 치과의사라는 직업에 만족하며 지금이 무척 행복하다고 했다.


아침에 출근할 때 횡단보도에서 만난 개인택시 아저씨가 이를 뽑으러 왔다. 내가 학교간 사이 몇 번 왔다 가셨다. 게다가 지난주는 하루 종일 비운일이 있었는데 그때 그가 다녀간 모양이었다. 그는 나를 교수님이라고 부른다. 하긴 아저씨라고 부르는 분도 있고 원장님, 선생님, 박사님… 다양하긴 해도 난 원장님이라고 불리는게 가장 좋다.


대형 프랜차이즈 치과병원이 어디 들어온다더라 거긴 임플란트를 얼마 받는다더라 어디 대형치과에는 세무조사가 나와서 얼마를 과징금으로 냈다더라…며칠전 만난 친구는 자기 병원근처에 유니트체어 30대나 되는 대형치과가 들어온다며 걱정 섞인 투로 말했었다. 마치 대형화 하지않으면 뒤처지고 왠지 실력도 없어보이는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다. 택시문짝, 지하철 안, 휘황한 글자들이 번뜩거리는 옥탑광고에라도 이름을 올려야 성공한 치과의사가 되는 이상한 시대다.


 출근때나 퇴근때나 아는 환자들 서넛은 만나 인사하고 근황을 묻고 혹은 짧은 상담삼은 대화를 하는 나는, 동네 치과 원장이다. 퇴근때 시장기를 달래려 시장통 입구에서 오뎅 하나 찍어 물고 오뎅국물 마시고 있으면 “샘도 오뎅 드시네요” 하며 수줍게 웃는 동네 사람들이 너무 좋다. 나는 동네치과 원장인 내가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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