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랑채를 들어오면 곧바로 ‘ㄱ’자 형태의 큰 사랑채가 보인다. 이 사랑채는 2006년에 복원된 건물로 여기에는 면암 최익현선생과 구한만 의병장이었던 신돌석 장군, 의친왕, 스웨덴의 구스타프 국왕(당시 왕세자), 백산 안희제선생이 이곳에 자주 왕래했다고 한다. 행랑채 좌측에는 복원 예정인 작은 사랑채 자리가 위치하고 있다. 그 뒤로 사당이 있다.
경주 최부자 고택의 가장 큰 특징은 곳간채(창고)다. 현존하는 목재 곳간 중에 가장 크고 오래됐다. 곳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전통한옥으로 지어졌는데 최부자 집의 부의 정도를 알만한 척도가 되고 있다. 이곳에는 쌀 800석(가마)를 보관할 수 있다고 한다.
‘인심은 곳간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듯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먹을 것에 대한 문제는 최고의 관심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부자인 나라인 미국도 전체국민의 1%가 나라 전체 부를 43%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로인해 미국은 OECD 국가 가운데 굶주림에 허덕이는 순위가 4위라는 보도를 접하고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결국 아무리 많이 가진 부자나라도 서로 나누지 않으면 빈부의 격차가 심하게 생긴다. 나눔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는 것이다.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나눔을 잘 하는 것도 아니고 가진 것이 적다고 해서 나눔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나눔은 그 사람의 마음 씀씀이와 연결된다고 한다. 내가 가진 것이 적다고 해서 나중에 대재벌이 되어 넉넉히 나누겠다고 다짐한다면 그 사람은 대재벌이 되어서도 나눔에 인색할 가능성이 짙다. 경주 최부자 고택의 곳간을 보면서 부자로서 베품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새삼 배우게 된다.
‘ㅁ’자 형태의 안채는 정남향으로 사방이 막혀 있다. 안채로 들어오는 입구에 ‘ㄱ‘자 형태의 집이 있다. 그 우측에 문이 나 있어 다시 들어오는 길이 ‘ㄱ‘자로 꺾인다. 집 안주인을 비롯한 부녀자들이 머무는 공간이 만큼 이곳으로의 출입은 엄격히 제한된 것을 보여준다. 안채에는 우물도 있고 옹기를 놓는 자리도 있는 전형적인 살림공간이다.
사랑채와 안채에는 후손들이 살지 않는다. 가문의 마지막 주인이 재산을 교육사업에 기증을 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후손들이 살지 못하는 점이 마음 한구석을 찌르면서 경주 최씨 가문의 기부정신이 현재를 사는 시대에 맑게 투영되고 있는 듯하다.
외형적으로는 모든 게 갖춰진 듯하나 경주 최씨 가문이 살지 않는 고택은 좀 썰렁했다. 최 부자 고택의 뜰을 거닐어 보았다. 사랑채가 복원됐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은 전시관 같았다.
현재 최씨 후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 지는 중요하지가 않다. 다만 마지막 이 고택을 기부한 선조가 독립운동이라는 큰 일을 했고, 교육사업을 위해 희사를 했지만 이제는 우리시대에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심어 주기 위해서는 그 후손들이 이 집에 거주해야 그 가치가 빛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박물관이 소장하며 그저 문화재라는 이유로 많는 건물들이 복원되고 있지만 진정한 시대의 정신을 가진 최씨 가문의 사람들이 살아야 하는 곳이 아닐까.
여태동 / 고택 칼럼니스트
#여행정보
경주 시내에서 승용차로 천마총이 있는 대능원을 지나 우측으로 돌아 교동에 이르러 교촌교를 건너지 말고 바로 앞에서 좌회전을 해 반월성 쪽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교동의 경주 최씨 집성촌이 나오고 다시 좌측 정면에 최 부자 고택이 보인다. 우측 정면이 경주법주의 원조인 경주법주를 제조하는 곳이다. 주소는 경주시 교동 69번지다. 최부자 고택에서는 하룻밤 체험이 되지 않는다. 다만 인근 앞에 최근 개원한 교촌체험마을(054-742-2524)에서 하룻밤 머물며 숙식을 할 수 있다. 관리인에 따르면 향후 최부자 고택에서도 하룻밤 머물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가볼만한 곳
첨성대
신라시대의 천문대였다는 게 정설이며 어떤 이는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국보 제31호로 지정돼 있다. 최부자 고택에서 1km 정도 거리에 있다.
모양은 원통형으로 남쪽 문에 사다리를 걸었던 자리가 있다. 30cm 높이의 돌 361개 반을 사용하여 상층부와 기단을 제외한 27단을 쌓아 올렸다. 전체 돌의 개수는 401개다.
꼭대기에는 우물정자(井) 돌이 2단으로 짜여 있는데, 그 위에 관측기구를 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 관측기구를 정상에 설치하고 춘분 ·추분 ·동지 ·하지 등의 24절기를 별을 통하여 측정한 것으로 추측한다.
대능원
경주시 황남동에 위치한 고분군들로 가장 규모가 크다. 20여 기의 크고 작은 신라시대 고분이 남아 있다. 이 안의 고분들은 평지에 위치한 대형고분으로 신라의 왕과 귀족들의 능묘로 추정된다. 외형상으로는 대부분 원형봉토분으로 되어있으나 합장용의 쌍분도 있고, 내부 구조는 몇몇 고분의 발굴 결과 신라특유의 적석목곽분(돌을 쌓아 그 안에 나무관을 넣어 그 위해 흙을 덮어 묘를 만든 무덤)인 것도 있다. 발굴과정에서 금관을 비롯한 각종 금은제 장신구와 무기, 마구등 수 많은 유물이 출토된 천마총과 황남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