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노닐다, 기자들의 BOOK리뷰] 시간과 공간, 삶과 죽음의 ‘변증법’

  • 등록 2013.01.3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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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노닐다
기자들의 BOOK리뷰


시간과 공간, 삶과 죽음의 ‘변증법’


1991년 여름. 우리 집 서재에 두서없이 꽂혀 있던 장서(藏書)들 중에 이 책이 유일하게 나의 선택을 받은 이유는 단지 작가가 독일인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독일 근·현대 소설에 심취해 있던 나로서는 조금은 어이없게 ‘토마스 만’이라는 거장을 만난 셈이다.


거창하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래서 내 삶의 궤적이 조금 달라졌다면, 그게 바로 인생이고 운명인 것이다. 


‘마의 산’은 열일곱, 질풍노도의 시기에 지적 허영심과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탁월한 ‘텍스트’였고 무려 1200페이지의 대작을 단번에 독파하는 동력까지 줬다. 그 후로 수십 번을 다시 읽었지만 그 때 마다 이 책의 울림은 내안에서 점점 커져갔다.


하지만 1990년 대 초반 ‘마의 산’을 읽는다는 건, (하루키의 방식대로 말하자면) 비록 ‘반동’은 아니지만 결코 권장할 만한 독서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이브’한 일본식 청춘소설이나 운동권 후일담(혹은 소설), 그리고 한국 근·현대 교양서가 마치 전염병처럼 유행했던 당시, 내 주위에서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유럽 문화의 ‘결정체’, 시간과 공간의 ‘변증법’


줄거리는 매우 간단하다. 주인공인 한스 카스토르프는 함부르크 조선소에 취직이 확정된 23세의 청년으로 병을 앓고 있는 사촌을 방문하기 위해 스위스 다보스에 있는 전문 요양원을 찾는다. 하지만 예기치 않게 자신의 병을 발견한 그는 ‘평지’와 격리된 이곳에서 무려 7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다양한 계층과 인종들이 그의 주변에 머물거나 혹은 스쳐 지나가며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이 이 소설의 ‘틀’이다.


이런 점에서 ‘마의 산’은 이른바 ‘교양소설’의 전형을 따라간다. 사실상 백지 상태의 주인공이 다양한 경험과 인간관계를 통해 독립된 자아와 인격을 형성해 간다는 형식에서 보면 그와 같은 견해는 매우 온당해 보인다.


하지만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작가의 시대정신과 사상의 ‘아우라’는 형식적 측면에 기대서 이해하기에는 매우 방대하고 또한 난해하다.(이는 독일어 번역 과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번역자에 따라 편차가 큰 것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휴머니즘’, 세계 시민주의의 펜을 들다


주인공이 머무는 요양원에는 당시 유럽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인간 군상이 모여 육체 혹은 정신의 질병을 매개로, 삶과 죽음의 질곡에서 방황하고 번뇌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주인공의 주변인물로 등장하는 인문주의자이자 계몽주의자인 세템브리니와 급진적 사상을 가진 종교가 나프타의 논쟁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토론의 묘미와 사상으로서의 균형감, 생동감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반면 ‘교육자’인 그들과 달리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가 사랑하게 되는 신비로운 러시아 여인 클라브디아 쇼샤는 어떤가. 그녀와 그녀의 남자인 페페르코른의 존재는 생명에 대한 갈망과 열정, 삶과 미래에 봉사하는 휴머니즘을 일깨우는 일종의 ‘장치’가 된다.


이 대목에 이르면 독자들은 다시 한 번 작가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방대한 철학적 사유와 관념을 묘사하는 작가의 ‘펜’이 날렵하면서도 동시에 심오한 주체의 각성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토마스 만은 1875년 북부 독일 지역에서 태어나 삶과 문화, 신념의 가치를 기반으로 한 탁월한 작품들을 남기며 독일의 소설예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위대한 작품에 비하면 별 내용도 아니겠지만 1929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건, 그냥 각주로 알아둘 만하다.


윤선영 기자 young@kd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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