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15번째) 아버지의 자전거(상)

  • 등록 2013.02.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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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y Essay
제1815번째

 

아버지의 자전거(상)


회색빛 바구니가 달려 있고 변속기어가 없으며 검은색 각진 플라스틱 손잡이와 빛바랜 회색안장 그리고 앞바퀴와의 마찰력으로 전기를 만들어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빈티지(vintage) 스타일의 다홍색 자전거. 우리 아버지가 생전에 타시던 자전거이다.


작년 추석명절에 일이다. 추석이면 으레 온가족이 한상 가득 차려서 먹고 마시며 밥상을 치우는게 일이다. 추석특선영화도 재미없고 집안에 있기엔 볕이 너무 좋아서 자전거를 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 엄마! 집에 혹시 탈만한 자전거 없어요?” 송편을 빚으시던 어머니는 아버지께서 타시던 자전거가 헛간에 있다고 하신다. ‘아버지가 타시던 자전거가 남아 있었나?’ 기억을 더듬으며 헛간에 가보니 여기저기 녹슬고 거미줄이 잔뜩 진을 치고 있는 자전거가 한 대 웅크리고 있다. 헛간 터줏대감인 누렁이는 외부인의 방문이 마뜩잖은지 연신 짖어댄다. ‘이게 주인집 막내도련님을 몰라보고’.


자전거를 꺼내 마당에 세워 놓으니 9년간의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아버지가 쓰셨던 물건에 대해서 관심을 갖거나 찾으려 애써 본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9년이나 지난 지금 새삼 아버지가 타시던 자전거라서 유난히 마음이 간다. 가만히 자전거를 바라보며 ‘네가 참 아버지가 많이 그리운가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의 유품이라 생각하니 녹이 슬어 있고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는데도 왠지 친근하다. 폭이 좁은 타이어는 바람이 빠져 납작하게 눌리고 여기저기 갈라져 있어 금방이라도 찢어질거 같다. 자전거만큼이나 오래된 자전거펌프로 바람을 넣고 한적한 시골길을 달려본다.


효심 깊은 둘째 아들이 사준 이 자전거를 타고 아버지는 대야 장터에도 가셨을 테고 농약통을 메고 밭에 나가 약을 치거나 삽과 쇠스랑을 싣고 농로를 달려 논에 나가서 일을 하시고, 가끔은 힘든 농사일로 부대낀 몸을 달래려 드신 약주로 자전거에 기대어 집으로 오셨을 게다.


견물생심! 지금이라도 당장 차에 싣고 아버지의 자전거를 가져가고 싶었지만 추석이라 어머님이 주신 찬거리와 야채며 쌀이 전리품마냥 차안에 한 가득이다. 아쉽지만 다음에 내려와서 가져가기로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귀경길에 올라서 아내에게 아버지가 타시던 자전거를 가져오고 싶다고 운을 띄웠다. 아내는 자전거를 가져와서 거실에 전시라도 해놓을 거냐고 묻는다. “아니, 내가 타고 다닐거야” 그러자 아내는 톨게이트 통행료며 자동차 기름값이 더 들겠다며, 그럼 형들에게 당신이 가져가도 되는지 먼저 양해를 구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이야길 한다. 일리있는 말이다. 다음날 형들에게 바로 문자를 보냈다. “형! 아버지 타시던 자전거를 서울로 가져가서 내가 타고 싶은데, 형 생각은 어때?” 현장에서 일하다말고 문자를 확인한 큰 형은 고맙다며, 그러라고 전화를 했다. 그런 일로 문자까지 준 동생이 기특했나보다. 본인은 왜 진즉 그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다는 작은 형은 본인이 아버지에게 사드린 자전거이니 원소유권은 본인에게 있는거 아니냐며, 언제든 아버지 자전거가 싫증나거든 본인에게 꼭 넘겨야 한다고 웃으며 이야기 한다. 즐거운 실랑이다.


추석연휴를 보내고 몇 주가 지나고 나서야 어머니댁에 내려갈 수 있었다. 결혼한 이후로는 늘상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방문했었는데 이렇게 혼자 차를 몰고 내려가 보기는 처음이다. 밤늦은 시각 도착해서 어머니가 당면을 푸짐하게 넣고 끓여주신 김치찌개며, 갓담은 겉저리, 노르스름하게 구워진 박대구이로 저녁상을 물리고 드라마를 보면서 동네 이집 저집의 소식을 묻는다. 위뜸(위쪽에 위치한 마을)에 영택이는 언제쯤 장가를 가게 될 런지, 옆집 인숙이 신랑은 뭐하는 사람인지, 큰 누나네 건강원은 요새 장사가 잘 되는지… 그러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뒤뜰과 앞마당과 텃밭을 둘러보니 대추나무와 감나무엔 가을햇살이 만들어낸 열매들로 가득하다. 초등학교시절 가을날 아침이면 나는 습관처럼 장독대 담벼락에 올라가 이슬먹은 대추를 따먹을 정도로 대추를 좋아했다. 감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단감을 한 소쿠리 따고 그렇게 좋아하는 대추도 따며 먹으며 한 박적(’바가지’의 전북방언) 채웠다. 감따는 장대 끝에 집중하느라 고개가 아프다 싶은데 아침먹으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랑 단둘이 마주한 소박한 아침밥상엔 햇살이 가득 내려 앉아 있다. 오랜만에 찾아오는 마음의 평안함. 이랬던 적이 마치 처음이었던 것처럼… 세상에서 한참이나 멀리 떠나온 듯한 편안함이다.


<다음에 계속>


임용철
선치과의원 원장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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