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노무
김기선 나라노무법인 공인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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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프 조혈계 질환 산재 첫 인정
산재란 업무로 인한 부상·질병·장애·사망
직업성 암 0.1% 등 업무상 질병 승인율 저조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재생불량성빈혈을 앓게 된 김지숙 씨에 대해 최근 근로복지공단이 산업재해를 인정하였다. 근로복지공단의 이번 판정은 림프 조혈계 질환이 산업재해로 인정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번 호에서는 이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업무상 재해라 함은 업무상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질병·장애 또는 사망을 말한다. 이때의 업무란 근로계약에 따른 업무뿐 아니라 ‘실 근로에 부속된 업무’, 교육, 대기, 행사, 출장, 거래처접대 등 업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주변업무까지 포함된다.
다만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업무와 재해 간에 상당인과관계가 존재해야 하는데 문제는 이 상당인과관계에 대해서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증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하게 증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재해근로자 입장에서 인과관계를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업무상 부상이 아닌 업무상 질병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한데 실제 우리나라 직업성 암 승인율이 0.1% 수준에 머물고 있는 점만 보더라도 업무상 재해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다.
이번 삼성전자 반도체 사건에서 근로복지공단은 약 5년 5개월간 근무한 김지숙 씨의 ‘혈소판감소증 및 재생불량성 빈혈’을 산업재해로 승인했다고 밝혔다.
재생불량성빈혈(무형성빈혈)은 골수 손상으로 조혈기능에 장애가 생겨 백혈구, 혈소판 등이 감소하는 질병으로 선천적인 경우도 있으나 80% 이상은 후천적인 것으로 이러한 후천적 무형성빈혈은 방사선 노출, 화학물질(벤젠 등), 약물, 감염, 면역질환, 임신 등이 원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재해근로자 김지숙 씨는 1993년 고등학교 졸업 시기에 삼성에 입사했고, 입사한 지 2년 만에 ‘납중독’ 진단을 받았다. 이후 부서를 옮겼지만 이후에는 ‘악성 빈혈’이 발생했다. 자료에 따르면, 김 씨는 ‘철분제’와 ‘레모나’ 등을 복용하며 삼성에서 하루하루를 버텼다고 밝혔다. 또한, 김 씨는 언제부터인가 작업하면서 기계에 살짝만 부딪쳐도 시커멓게 멍자국이 생겼으며 근무 중에 두통이 찾아오고, 가슴 한쪽이 크게 붓기도 했다고 한다.
또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을 했고, 면장갑만 끼고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등 유해 물질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근무를 했다고 한다. 결국 재해근로자는 1993년 12월부터 약 1년간 삼성전자(주) 기흥공장에서, 그 후 약 4년 5개월간 온양공장에서 근무하였고, 근무 과정에서 벤젠이 포함된 유기용제와 포름알데히드 등에 간접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과 1999년 퇴사 당시부터 빈혈과 혈소판 감소 소견이 있었던 점 등이 고려돼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된 것이다.
이번 산재 인정은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역학조사와 근로복지공단의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결정된 것으로 삼성전자 근로자의 재생불량성빈혈이 산재로 인정된 첫 사례이다.
사실 우리 국민들은 이러한 산업재해 승인이 저조한 점에 대해서 많은 의문점을 갖는다. 또 무재해사업장의 경우 세금 감면을 받고, 보험료, 업체 선정 시 불이익을 받지 않게 되므로 기업과 공단 간의 봐주기식 처리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은 이번 사건에서 “공단은 앞으로도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업무상 재해 여부를 결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고, 필자 역시 공단이 원칙과 기준에 맞게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하고 법을 적용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이나 재생불량성빈혈 등으로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는 총 22명이다. 그동안 18명에 대해 판정이 내려졌지만, 아무도 산재인정은 받지 못했다. 김 씨의 산재 승인이 이뤄진 현재, 이들 중 10명은 산재판정에 대한 재심을 요구하는 소송을 진행 중이다. 나머지 3명은 현재 공단의 산재승인을 기다리는 중이다.
원칙과 법에 따른 기준에 따라 재해근로자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필자 역시 공인노무사로서 사회정의 실현에 일조하기를 새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