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담쟁이

2009.12.28 00:00:00

겨울 담쟁이


고즈넉한 돌담에 푸르고 넙적한 담쟁이 잎이 탐스럽게 걸려 있다. 소소한 바람이 담쟁이 잎을 스치고 지나간다. 바람결을 따라 담쟁이 잎이 파도치듯 춤춘다.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이야기 하듯…….
어느 잎은 간지럽다고 웃고, 어느 잎은 슬픈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흐느낀다. 속내를 보이기 싫은 잎은 수줍은 듯 몸태를 기울고, 호방한 잎은 너털웃음에 힘차게 세상을 뒤흔든다.


이 모습은 여름 담쟁이다. 여름 담쟁이는 부러울 것이 없다. 힘차게 자랄 수 있는 물이 넉넉하고, 강렬한 태양은 담쟁이 잎을 짙푸르게 만들고, 담쟁이 넝쿨은 무서울 것 없이 맹렬히 뻗어 간다.
세찬 장맛비에도 몸 한번 툴툴 털면 빗물이 산뜻하게 떨어져 더더욱 깔끔해 지고, 폭풍우가 몰아쳐도 서너 번 허리를 기울었다 일으키면 거뜬하다. 여름 담쟁이는 담쟁이의 절정기이다.


잔서리가 내리는 어느 날 밤, 검푸르던 담쟁이 잎이 어느 순간 단엽(丹葉)으로 변했다. 다소곳이 숙인 붉은 담쟁이 잎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꿈의 잔치를 하고, 잔바람에 맥없이 떨어지는 잎이 아름다웠던 세월의 날개를 너울너울 춤추며 마지막을 완성한다.
마지막 잎새를 연상케 하는 가을 담쟁이의 잎은 마음의 허전함을 나타내기 보다는 애틋한 사랑의 안타까움을 이겨내는 힘의 상징이다.


지난날의 슬픔, 아픔, 기쁨, 즐거움, 오해, 싸움, 고요, 행복 등등을 씻어버리고 스스로 떨어져 망각의 세계로 들어가 버린 가을 담쟁이 너는 참 좋겠다.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는 인간사가 밉다.
돌담 사이로 찬바람이 세차다. 검게 타버린 담쟁이 손이 차디찬 돌담을 움켜쥐고 있다. 손이 많이 시리겠다. 지난날에는 무성한 잎이 바람도 막아주고, 따스한 햇살이 돌담을 따듯하게 데워주고, 나비와 잠자리가 놀러와 심심하지 않아서 좋았는데…….


함박눈이 내린다. 건너편 산허리의 소나무에 함박눈이 휘 뿌리고 있다. 그것을 띠어내 화선지에 옮기면 동양화다. 돌담에 함박눈이 소복이 쌓이고 삽살개 두 마리가 함박눈을 좇아 천방지축으로 뒹구는 모습을 띠어내 화선지에 옮기면 이 또한 동양화다. 담쟁이 넝쿨과 손에 함박눈이 내려와 소담하다. 이것도 동양화 일까?


담쟁이 손은 넝쿨에서 나온 잔뿌리란다. 이 잔뿌리가 가파른 돌담이나 벽에 붙어 담쟁이 전체를 지탱하고 거침없이 세상을 뻗어간다. 담쟁이의 손은 담쟁이의 모두이고 하나이다. 또 생의 기본이다.
아무리 돌담이 춥고 시리고 매서워도 담쟁이 손은 이를 놓지 못하고, 소복이 쌓인 눈이 녹아 얼어도 돌담에서 손을 뗄 수가 없다.


겨울 담쟁이는 힘겹고 고통스러워도 참아야 하고, 살을 에는 매서운 추위도 이겨야 한다. 그래서 담쟁이 손에는 강력한 끈기와 용기가 있다.
매섭고 추운 세월과 삶 뒤에는 따듯한 바람이 불어오는 법, 담쟁이 손에도 희망이 있다.
담쟁이 손 밑에 있는 움을 보아라. 지난날의 영화를 숨기고 있는 싹이 있지 않은가? 지금 겨울 담쟁이는 버티기 힘든 가파른 돌담에 붙어 모진 바람과 추위에 언 손을 내놓고 있으나 이는 찬란한 내일을 위함이니라. 참 아름답다.

 

 

신 덕 재

중앙치과의원 원장

신덕재 중앙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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