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y Essay
제1819번째
박쥐 (상)
아파트 현관을 나서니 찬바람이 옷 속으로 되알차게 스며든다.
어젯밤 텔레비전 뉴스에서 오늘이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이 될 거라는 예보대로 제법 찬 기운이 낯볼을 비빈다.
이렇게 추울 줄 알았으면 지하 1층 주차장에 차를 둘 걸 하고 후회를 하면서 아파트 중앙광장을 지난다.
이 시간이 유아원과 유치원 아이들이 등교하는 시간인가 보다. 노란 차 두어 대가 중앙광장에 서서 자기네 아이들을 태우려고 붕붕붕 매연을 뿜고 있다.
두툼한 옷으로 무장한 꼬마 아이들이 자기차를 찾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한바탕 소란이다. 그 모습이 아름답고 생기발랄하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에 속으로 무심히 미소를 띠우며 검은 아스팔트길을 따라 지하 2층 주차장으로 향했다.
검은 아스팔트길을 따라 걷던 난 소스라치게 놀라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박쥐 한마리가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배를 깔고 다가오는 나를 보고 붉은 입을 짝 벌리고 대거리를 하고 있지 않은가. 왜 저러지? 아이고, 불쌍해라. 무엇을 원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가까이 오는 나를 위협하는 건가? 하여간 자세한 뜻은 모르나 지금의 상태가 매우 힘들고 고달파 보인다.
박쥐를 보는 순간 흡혈박쥐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예리한 이빨로 돼지나 송아지의 귀뿌리를 V자로 생채기 내 피를 핥다 먹는 흡혈박쥐 말이다. 붉은 피를 먹는 박쥐 모습 때문에 왠지 박쥐하면 감정이 좋지 않다. 또 중앙광장의 순진한 꼬마아이들과 음습(陰濕)한 흡혈박쥐를 오버랩 하니 더더욱 박쥐에 대한 이미지가 용천맞다. 행여 이 박쥐가 꼬마 녀석들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다시 한 번 허리 굽혀 박쥐를 보려하니 이번에도 맹렬하게 입을 크게 벌려 저항을 한다. 저 저항의 뜻이 무엇일가? 어둠 속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박쥐가 왜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배를 깔고 아무 상관없는 나를 향해 저항을 할까? 날아갈 조그만 힘만 있으면 후루룩 날아가면 그만일 텐데…….
아하! 어딘가 부상을 당했거나 기진맥진해 날아갈 힘이 없는 거다. 입을 크게 벌리는 것은 저항이 아니라 도움을 청하는 신호일지도 모르겠다. 힘겨워하는 모습이 애처롭고 안쓰럽고 측은해 보인다. 차가운 길바닥이 아닌 옆 화단으로 옮겨주고 싶다. 그냥 두면 노란 유치원 차나 지나가는 승용차에 깔려 죽을지도 모른다.
가엾은 생각에 박쥐를 옆 화단으로 옮기려는 순간, 박쥐로 향하던 내 손이 순간 멈추었다. 박쥐동굴의 구아노 때문이다. 박쥐의 배설물 구아노! 좋은 비료라는 말도 있지만 온갖 병원균이 득시글거리는 세균 덩어리 아닌가? 또 박쥐는 광견병도 옮긴단다. 밤하늘을 찍찍 소리 내며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박쥐 모양새도 괴기스럽고 혐오스럽다.
차가운 아스팔트에 배를 깔고 있는 박쥐가 불쌍하고 위험해 보이나 박쥐를 집어 화단 옆으로 옮기기에는 나의 손이 허락하지 않고 용기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순간적으로 멈춰 준 손이 얼마나 감사 한지! 행여 손에 광견병 균이라도 묻었으면 어떠했겠는가? 또 손에 생채기라도 내 피라도 났으면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웠겠는가? 멈춰 준 손이 얼마나 고맙고 대견한지!
허리를 펴고 주위를 둘러보니 노란 유치원차도 이미 다 떠난 뒤다. 유치원 차도 없고 주위에 승용차도 없으니 박쥐에 대한 위험도 없어진 듯하다. 이젠 손을 멈춘 변명도 되었으니, 후련한 마음으로 자리를 떠나도 되겠구나!
내가 아니어도 다른 사람이 불쌍한 박쥐를 보고 구해주겠지 뭐! 작은 집게라도 있었으면 박쥐를 화단 옆으로 옮겼지! 그냥 갔겠어? 아무리 출근이 바쁘더라도 말이야. 그냥 박쥐를 놔두고 간 것은 내 원래 모습이 매정해서가 아니라 사정이 이러저러 했다는 거다. 그런데 왜 자꾸 내 행동에 쓸데없는 변명을 늘어놓는지 모르겠네? <다음호에 계속>
신덕재
중앙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