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o chemica
현존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그 특성을 나타내는 별칭이 참 많다.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 호모 파베르(Homo faber), 정치적 인간 호모 폴리티쿠스 (Homo politicus), 경제적인 인간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 호모 로 스 (Homo loquens) 등등.
그런데 얼마 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란 존재가 비록 앞서 나열한 고차원적인 특성을 모두 가진 것이 사실이지만, 어쩔 수 없이 인체 내부에 존재하는 화학적 물질에 좌우되는 호모 케미칼루스(Homo chemicalus)가 아닐까 하는. 이 명칭은 머리 속에 떠오른 대로, 내 맘대로 붙여본 것인데, 나중에 찾아보니 제대로 된 라틴어로는 ‘Homo chemica’ 쯤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뇌에서 분비되는 여러 호르몬이나 신경전달물질의 차이가 인간행동을 강력히 지배하는 여러 예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우울증이 생기기 쉽고, 뇌 속의 노르아드레날린 수치가 낮을 경우 도박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중간 강도의 운동을 30분 이상 했을 때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인 Runner’s high는 마약 성분과 구조와 기능이 거의 같은 화학적 전달물질인 오피오이드 펩티드(opioid peptide)가 분비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또, 일정한 시간 동안 운동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면 노르에피네프린의 분비가 저하되기 때문에 우울한 증세가 약화된다고 한다. 더 쉬운 예를 들자면, 아무리 정신력이 대단한 사람이라도 다량의 마취제를 투여하면 정신을 잃을 수 밖에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화학 성분의 영향을 받는 것은 비단 뇌 뿐만이 아니다. 우리 몸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단 하나의 세포에서 시작해 첫 번째 세포가 둘로 분할하고, 둘이 넷이 되는 일이 계속돼 그런 분할이 47회 반복돼 1경(1016)개의 세포가 생기게 되면 인간으로 태어날 준비가 끝나고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이렇게 태어난 인간은 각 세포가 지속적으로 영양소를 받아들이고 노폐물을 배출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생명 활동에 필요한 다양한 물질이 적당량 존재하지 않으면 건강하게 생명을 유지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필자는 유물론자는 아니기 때문에, 물질이 근본적인 실재이고 마음이나 정신을 부차적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 정신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육체의 존재는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기 때문에 건전한 정신 활동을 위해서는 몸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영혼의 무게가 21g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영혼의 무게가 있건 없건, 정신작용을 하는 ‘영혼’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고, 이 영혼이라는 것이 물질에 기반한 신체를 필요로 하니 말이다.
정신과 육체는 상호보완적이다. 몸이 아프면 의지가 약해지기 마련이고, 정신력이 약한 사람은 몸을 건강하게 잘 건사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몸에 좋은 운동을 하고, 몸에 좋은 습관을 익혀 우리 몸을 잘 보살펴 주어야 한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필요한 정신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게 잘 다독여 주어야 하는 것이다.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미처 글로 표현하지 못한 많은 것들은 독자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 놓고,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존 로크의 명언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은아
e-바른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