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일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일상이 변하기를 바라며 진료하는데 밖에서 번잡거리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마음도 웅성거려 곁눈질로 보니 남자 세명이 들어오는게 보였습니다. 팔짱을 낀 세남자들이 이상하기는 하지요. 아무튼 좀 이상한 분위기였습니다. 성인 남자 치료 받는데 보호자가 두명이나 따라 오는 일은 드문 일이기도 하고요.
저희 직원이 굳은 표정으로 예진하고 제게 문의후 x-ray를 찍는데 방사선실로 보호자들이 따라들어가는 눈치였습니다. ‘뭔가 사단이 있구나’생각하면서도 진료중인 환자를 중단할 수 없어서 그냥 두었습니다. 이때 이미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남자 셋이 두런두런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친한 사람들 같구요. 형과 동생같은 느낌.
순간 떠오른건 환자를 가장한 강도단…그럼 떼강도. 어째 보안업체에서 비상벨 설치하라고 할때 하지 않았던고 하는 생각…. 또는 동네 양아치들이 우리 치과에 예쁜 위생사있다는 소리를 듣고 놀러왔을까 하는 생각… 그래 우리 OO씨가 이쁘긴 예뻐….
이윽고, 마침내 그들에게 제가 다가가야 하는 순간이 되었습니다. 후자(예쁜 직원)쪽에 바람을 두고 다가가는데, 저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던 두 남자가 돌아서더군요. 그냥 그런 인상. 선하지만 약간 강인해보이는… 그래 나도 강한 모습을 보이리라하는 생각에 두 사람사이를 뚫고 지나가기로 했습니다. 이를 악물고 두눈을 치켜뜨고…이는 마치 거북선이 왜선을 당파해 적진을 뚫어 조국을 구하리라는 신념을 보일때 이런 위용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또는 모두의 뇌리에 박혀있는대로 ‘라스트 모히칸’의 포스터로 보아온 부릅뜬 다니엘 루이스의 돌진을 떠올리며….
다행히 순순히 비켜주더군요. 인사까지 하며… 순간 ‘이 세 사람사이에 내가 끼이면 포위되는구나’ 집단구타내지는 인질로 잡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렇다고 멀리서 떨어져서 어떻게 왔냐고 물을 수도 없고….
‘거북선은 철갑이라도 있고, 루이스는 토마호크라도 들었지.’
아무튼 어지러웠습니다. ‘내가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구나 돈을 많이 줘야 사람상하지않고 그냥 갈텐데, 오늘은 벌어 놓은게 없을텐데’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떻게 오셨냐고 체어에 정좌해 긴장한듯한 남자에게 묻는 순간 나는 세 남자의 정체를 알았습니다. 체어에 앉아있는 사람이 수갑을 차고 있었습니다. 순순하던 두 남자는 형사였던거지요. 한 달쯤 전에 치료받다가 중단한게 아파서 왔다고 합니다. 24번과 37번.
가슴이 내려앉는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한번도 물속에 머리통을 넣어본 적 없는 제게 산소통매고 물로 들어가라는 소리를 들은 신혼여행때와 유사한 심정이랄까.
이를 빼달라고 하더군요. 치료를 받을만한 여건이 안된다며… 형사들은 원장님이 알아서 해달라고 하고 저는 치료를 하자고 했습니다. 스물여섯이었습니다.
제딴에는 발치후 지혈이 안된다고 입가로 피흘리며 제 꿈에 나타나면 어떡하나를 두려워했기 때문일수도 있습니다. 열심히 했습니다. 치수가 남아있었는지 아프다고 하더군요. 무서웠습니다. 치과기구중엔 날카로운게 많은데 하는 생각도 들면서 이 사람 다음에라도 해코지를….
머리(제 머리)가 쭈뼛거리는것처럼 느껴지는 그의 통증을 호소하는 말이 진땀까지 나게 하더군요.
아무튼 열심히 해서 치료를 종료하고 이러저러한 설명을 하고 그 사람이 일어나야 하는데, 브라켓테이블에 놓인 기구들(30cc주사기, 엔도 익스플로러 등)이 어찌나 날카로워 보이든지(항상 그러는것처럼 자연스럽게 보이려 하며) 한 아귀로 집어서 저희 직원에게 줬습니다. 많은 기구를 한꺼번에 집어들기 위해 굉장한 집중을 했음은 물론입니다.
그들이 간후, 저희 직원이 원장님도 무서우셨나보다고 웃더군요. 이때의 강하고 심지 굳은척은 강한 부정이 되어, 결국 긍정이 되어버림을 알지만 그런 척은 했고요. 그리고 그들이 오늘 다시 왔습니다. 피의자는 훨씬 아프지 않다고 치료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형사들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며 언제 송치되느냐고 물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2~3일 더 있어야 된다는군요.
오늘 기어이 근관충전하고 와동충전까지 해서 내일은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먼저 와서 기다리셨던 분들과 예약하셨던 분들도 아무말도 묻지 않고 조용히 기다리시더군요.
환자로 온 친구는 의외로 조용하고 인사도 잘하는 친구였습니다. 갈때는 꾸벅 인사하며 고맙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살짝 웃으며 나갈때는 인상이 좋다고 느껴졌습니다.
세상에 나쁘게 물든 제가 그의 죄와 사연을 모르면서 나쁜 사람일거라고 추정하고 경원해 무서워한게 부끄러웠습니다.
죄는 미워하지만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포승한 그를 데려왔지만 동생처럼 생각하며 치료가 잘 되길 바라는 형사들의 모습도 인상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보인 예의와 치과의사에 대한 존중에 보람을 느꼈습니다. 수갑찬 환자를 치료하고 자신이 포승한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니 부끄러움과 보람을 느끼며, 생계를 꾸리기만은 아닌 직업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 계기였습니다.
우리가 늘 벗어나고 싶은 일상은 다른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일을 하며 보내는 시간을 의미하는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류희동 이사랑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