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할당제’에 관한 소고

  • 등록 2014.04.04 13:5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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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y Essay-제1920번째

얼마 전 지구 위에 편만한 인종차별을 해결하기 위해 평생 노력하셨던 넬슨 만델라 前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께서 서거하셨습니다. 기회를 박탈하고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사회악으로서 불평등은 민주 시민인 우리 모두가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겉으로는 남녀가 평등하게 일 할 수 있는 사회처럼 보입니다만 사실은 남자와 여자에게 요구되는 규범이 다르기에 결코 평등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즉 평균적으로 남자 치과의사들은 가사 일에서 비교적 자유로우며 좋은 곳에 개원하여 성공가도를 달리거나 전공을 살려 공직의사가 된 경우에도 일에만 집중한다면 경력의 단절이 없는 평탄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반면 결혼한 여자 치과의사들은 한창 실력을 키워 동료들과 경쟁해야 할 때 우선 가정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특히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거쳐야 하고 이후에는 거의 전적으로 양육 및 교육의 책임을 집니다. 그러면서 또 일에서도 성공을 요구받는 사회 구조입니다. 사회활동을 할 때 이렇게 분산된 에너지로 일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일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지만 이런 조건에서도 열심히 일하고 있는 동료 여자 치과의사들을 보면 저절로 존경하는 마음이 솟아오릅니다. 가족들을 위해 좋은 음식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위해 교육에 동분서주 하며 직장 일과 가사 일을 번개처럼 오가며 해결해 내는 그들, 건강을 위해 운동까지 거르지 않는 항상 씩씩한 그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부족하지만 그 일원인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 전반적으로 일하는 여성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내 부인이 부서 회식에 참여를 안 하고 일찍 들어와서 아이들을 챙기고 시댁 모임을 챙기고 저녁식사를 챙기면 흡족한 마음이 들지만 내 직장 동료가 집안 문제로 회식을 경시하고 정시 퇴근하고 가버리면 무언가 직장 일을 소홀히 하는 느낌이 듭니다. 직장 생활에서 회식이나 잔업 등 플러스 알파에 대해 유연성이 부족한 여성동료에 대해 우리는 ‘이래서 여자는 안 된다’느니 ‘여자라서 할 수 없다’는 생각을너무 쉽게 하는 것은 아닌지요? 여성이 조금이라도 일에 소홀할 경우 ‘여자라서 게으르다’라고 하고 여자가 열심히 일하면 ‘여자가 드세다’라고 합니다. 이 모든 편견들은 아직도 평등한 사회활동이 제한받고 있음을 드러내는 일례입니다.

작년부터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 여성할당제 즉, 당연직 여성대의원제가 실시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많은 불평등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저는 원래는 ‘여성 할당제’를 찬성하지는 않았습니다. ‘여성 할당제’는 우리 사회에 편만한 남녀 차별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리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단기적으로는 여성 대의원 수가 할당량만큼 늘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회의에서 ‘여성은 거저먹으려고 한다’고 생각하는 대의원이 한 명도 없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지, 그런 반감 속에서 실력으로가 아닌 할당량을 맞추기 위해 선출된 대의원이 의사결정과정에 떳떳하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품었던 것입니다. 즉 ‘여성 할당제’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기에 또 다른 역차별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딸의 참관수업에 갔다가 저는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는 것 같은 충격을 느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평등의 개념은 너무 유연성이 없는 원시적인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1학년 사회시간이었는데, 민주 사회에서의 평등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 주제였습니다. 저에게 제일 다가온 내용인즉슨, 현재 우리 사회에 있는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일시적인 취약계층의 권리 확대를 통해 더욱 빨리 평등을 획득하는 과정이 있는데 이것을 바로 ‘상대적 평등’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 깨달음을 계기로 저는 여성할당제가 더 이상 역차별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여성 치과의사들이 더욱 활동을 활발히 할 수 있도록 하는 ‘여성 대의원 비례 대표제’ 또한 상대적 평등의 일환이라는 인식아래 찬성하게 되었습니다. 단, 일시적이라는 조건하에서 말입니다. ‘남성연대’의 성재기 대표님이 2013년 7월 26일 남성 역차별에 대한 입장을 밝히며 한강다리에서 투신자살을 했습니다. 만일 이런 상대적 평등의 개념을 알았다면 ‘남성연대’의 성재기 대표님은 비운에 가시지 않아도 되었을 겁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럼 ‘여성 대의원 비례 대표제’를 무색화 시키지 않기 위해 우리 여성 치과의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지금보다 더욱 많은 여성 치과의사들이 지역 협회에서 활동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한창 어린 자녀들을 양육해야 하는 기간을 벗어난, 어느 정도 자녀들을 키운 여성 치과의사들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활동을 하면 어떨까요? 그 활동을 바탕으로 지역 협회에서 영향력 있는 인사를 키우고 대의원이 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입니다. 협회에서의 오랜 활동을 바탕으로 여성 대의원이 한 명 한 명 진출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실력을 기반으로 한 활동을 여성 대의원 진출을 위한 ‘풀뿌리 활동’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풀뿌리 활동’이 ‘비례대표제’를 압도할 때 더욱 선진적인 평등이 구현될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여성 대의원이 나오고 여성으로서 부회장을 넘어 치협 회장까지 배출되는 날을 고대합니다.

언젠가는 모든 사회적인 명칭 앞에 ‘여’자가 필요 없는 날이 올 것입니다. 존경하는 여성 대의원님들 및 부회장님 앞에도 ‘여’자가 더 이상 필요 없는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손잡고 그 좋은 세상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갑시다!
이안나  치과의사

이안나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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