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전통 여름 축제인 나담축제가 시작되는 7월 초, 러시아풍의 고급 레스토랑 서울에는 200여명의 몽골 치과의사들과 일부 치위생사들, 치과진료조무사 등 치과계 식구들과 몽골정부 보건부 차관을 비롯한 의료제도 분야, 구강보건관련 관리들, 한국의 치과의사회 부회장과 간호조무사협회장 및 임원들, 그리고 이날 행사를 주도한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과 몽골치과의사협회 인사들이 참여하여 향후 몽골의 치과협조인력들에 대한 바람직한 활용(Dental Auxiliary Utilization)이란 주제로 대 토론회를 가졌다.
지난 수 십 년 간 몽골은 정치, 사회, 문화 체제가 구 소련의 영향을 받아 공산주의 방식을 많이 따랐으며 30년전 까지만 해도 모든 학교(초,중,고가 함께 존재하여 1학년부터 11학년까지)에는 필히 학교치과진료실(School dental clinic)이 설치 운영되고 있었다. 물론 치과대학 교육도 변변치 않아 그 중 똑똑한 친구들은 모스코바에 유학가서 치과대학을 나왔지만, 대다수가 의과대학 치과학교실을 졸업하고는 정부가 지정한 보건소나 학교치과진료실을 담당하는 공공 치과의사로 근무하게 된다.
그런데 1980년대 후 부터 몽골 세상이 바뀌었다. 자본주의가 들어오고 민주화 바람이 불었다. 치과계도 급속도로 변화하여 과거 공공분야에 있던 치과의사들이 국가에 사표를 내고 도시로 나와서 개원을 하고, 모자라는 기술을 보충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으로 치과대학이나 개인치과로 대거 단기 유학을 갔다 오기도 했다.
이러한 실정이니 전국의 대다수 학교치과진료실(School dental clinic)은 담당치과의사가 없어져서 방치되다가 점차 폐쇄하게 되고 현재 6개 학교에만 남아 있다.
학교치과진료실제도는 1923년 뉴질랜드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수도 웰링턴과 크라이스처치, 오크랜드 등 3곳에 2년제 학교치과간호사(School dental nurse)교육 기관이 설립되어 주로 아동과 청소년에 대하여 예방진료, 구강보건교육과 아말감 충전 같은 1급 와동의 조기 우식치료를 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고, 졸업 후에는 뉴질랜드 내에 모든 초, 중, 고교에 설치되어 있는 학교 내 간단한 치과시설이 있는 학교치과진료실에 근무하게 하여 아동들의 구강병을 예방하고 조기치료와 계속관리를 하도록 하였다. 후일 이 인력을 치아치료사(Dental Therapist)라 하기도 하며 이 제도가 이웃 호주와 북유럽 국가들에 전해지고 일부는 아프리카와 인도 같은 아시아 국가 및 최근에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같은 나라들도 이 제도를 잘 운영하고 있어 아동들의 우식예방과 구강건강증진을 도모하는 가장 강력하고도 효과적인 학교구강보건사업으로 손꼽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선진국형 제도를 이미 후진국 몽골에서는 2차 대전 후 30여년간 시도해 왔다니 놀랍다. 그럼 몽골에서는 왜 그 이후 실패했을까, 바로 치과의사들로 하여금 학교치과의사로 근무하며, 예방과 교육을 담당하라고 했기에 그들은 예방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저 월급만 받고 있다가 사회변화와 함께 자본주의식 개원이라는 더 큰 수익성 있는 직업으로 쉽게 바꾸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러한 학교치과진료실은 예방과 교육이 주 업무이기에 이것을 주 전공으로 추구해야 하는 치과위생사에게 맡기도록 해야 한다. 즉, 모든 학교치과진료실을 치과위생사가 담당하며 운영하고, 한 행정구역마다 한 명의 학교치과의사가 있어 여러 개 학교의 학교치과진료실에서의 치과진료와 운영을 관리 감독하면 된다. 이것이 선진국 타입의 학교치과진료실 운영이다.
미국에서도 1900년대 초에 치위생사제도가 탄생하여 주 임무를 구강보건교육과 예방치과 진료로 잡고 그 외에 치과방사선 촬영 등 부수 업무를 관장하였으며 현재까지도 미국에서는 치과위생사가 주로 2년제 학제와 연간 15~20명 규모의 학과로 200개 정도 설립되어 있다. 2년 교육받고 치위생사 면허 후에 본인이 대학에서 2년 더 수학하면 학사를 취득할 수도 있으며, 그런 제도가 있는 대학이 대략 10%정도 된다. 미국 치위생사의 주 업무는 예방과 교육이기에 치과 진료보조 업무는 아예 관심도 없는 경우가 많다. 주로 취업은 주 보건기관으로서 각 학교에 파견 근무하며 예방진료(불소도포사업, 실런트 사업)와 각 학급에서 구강보건교육을 지속적으로 담당한다. 민간치과진료기관에서도 예방진료 임무 우선이기에 다수의 치위생사들은 어느 치과에 전속되지 않고 프리랜서로 여러 치과를 맡아 스케일링과 예방환자를 요일별로 모아놓으면 해당 요일에 그 치과에서 예방진료를 함으로써 자신의 전공성도 살리면서, 환자의 예방진료에 매진할 수 있게 된다.
치과 병의원에서 치과위생사는 매니저 아니면 프리랜서로 전문 예방진료 요원이다. 치과의사 곁에서 하는 진료보조는 모두 치과진료조무사(Denjtal Assistant)이다.
이러한 세계적인 진료협조인력들의 흐름을 배경으로 우리의 현실을 보자.
해마다 수 천명의 치과위생사들이 배출되고 있으니, 취업을 위해서라도 그들이 개원치과에서 치과진료보조 업무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기도하고, 치과의사 측에서는 치과위생사들의 직업 수명이 짧고 지방 취업을 기피하니, 해마다 보조 인력이 그래도 부족하다고 말하며 인력수급의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치위생사의 공공분야의 취업과 학교치과진료실 운영 같은 가장 핵심적인 구강보건사업에의 참여 노력이다. 1980년대에 전국 보건소 등지에 1300여명의 신규 치과위생사들이 보건소에 보건직 공무원으로 들어갔다. 그 후 계속 그 인원이 줄어 현재 구강보건만을 담당하는 보건소 치과위생사는 초창기의 반이 좀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학교치과진료실 사업은 1990년대 구강보건 관계자들의 노력으로 2000년 초 부터 시작하여 매년 수십 개 학교씩 증설하여 개설함으로써 불과 5년 뒤에는 전국에 약 400개 이상 학교에 학교치과진료실이 설치 운영되는 등 개가를 올렸으나, 그 이후 여러 가지 이유로 하나씩 폐쇄되어 현재는 반도 남지 않았다. 그 이유는 몽골의 경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시작단계인 2000년대 초반에는 보건소 치위생사들이 의욕적으로 거의 매일 학교치과진료실을 다니며 관리했지만, 점차 세월이 흐르면서 이틀에 한번, 3일에 한번, 1주일에 한번, 2주에 한번 방문하여 관리하는 것으로 점차 변질되어 가는 곳이 많아졌다. 담당자도 학교당국자나 보건교사와의 마찰도 생겼고, 업무가 힘들다는 이유로 기피하는 일도 생겼으며 심지어 행정일로 신분상승을 하기도 하였다. 뉴질랜드, 호주의 학교치과간호사가 처음부터 일평생 해당학교만 근무해야하는 것과는 취업 각오나 전문성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2000년대 중반부터 수년 뒤에 유니트체어도 낡고 기기도 낡아 새로 사달라고 요청할 때, 일주일에 한 번 사용할 유니트체어를 누가 사주겠으며 그럴 진료실 공간을 어느 학교가 쉽게 내어주겠는가, 결국 사용을 잘 하지 아니하여 효용성이 낮다는이유로 폐쇄 결정을 내린 경우가 많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치위생사의 본업이 예방과 교육이고, 이러한 일의 가장 핵심적인 직장이 바로 학교치과진료실인데 이에 대한 확대나 운영을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모습이 너무나 미미하여 아쉬워 보인다. 학교 치과 보건교사로 초등학교 7000개. 중고교 5000개 등 1만2000개 예방과 교육 전문의 치위생사 자리가 있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40여년전 간호사들이 양호교사, 지금의 보건교사를 어렵게 시작했고, 수년 전 영양사들이 학교급식교사로 만 명 가량이 들어가지 아니하였던가, 향후 우리의 치위생사들도 학교치과진료실 사업의 부활과 소신 있는 사명으로 다시 한 번 전문직신분 상승을 도모해야만 할 것이다.
이번 몽골의 ‘치과진료협조인력 활용 대토론회’의 결론은 치위생사 인력은 예방과 교육의 전문가로서 주로 보건소와 학교치과진료실 운영을 맡는 보건직 공무원으로서 자리 잡으며, 일부는 민간 진료기관에서 매니저급 활동을 하고 전국 대다수의 치과진료실에서의 진료보조 행위 일체는 치과진료조무사(Dental Assistant)에게 맡긴다는 두 인력간에 업무분담을 정하고 이를 위한 치과계, 정부부서가 함께 노력하기로 한 것이다.
뉴스거리가 별로 없어서였는지 아시아에서는 드물게 치과진료조무사(Dental Assistant)제도를 확립했다는 국가적 자부심에서인지, 그 날 행사시 몽골 TV방송 3군데서 취재 와서 행사 진행을 찍다가, 코이카 팀장인 필자에게도 마이크를 대며 통역을 통해 물어왔다. “한국은 어떠십니까?” 그 물음에 그저 씁쓸히 웃기만 했다.
신승철
단국치대 교수
신승철 단국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