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등록 2014.08.29 11:4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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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y Essay-제1958번째

지난 6월, 모임( 중국거주 위안부 할머니 생계비 지원 사업에 참여했던 선생님들 후속 모임)에 나갔다가 김 진 교수님 제안으로 스리랑카 치과진료봉사에 참여하기로 했다.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마음이 분주해졌다. 나는 서둘러 개발도상국·후진국. 불교국가, 쓰나미, 실론티의 나라 등 스리랑카 관련 인터넷 검색에 나섰다. 도대체 스리랑카와 구강병리학자는 무슨 인연이 있었던 걸까? 병리학자로서 구강암 연구를 하신 교수님을 통해 스리랑카가 구강암 발병률 세계 1위 국가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발병 원인이 베텔잎과 아레카넛을 향락으로 씹는 습관과 연관된다는 짧은 지식도 얻었다.

출국이 임박했을 때 치과진료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임시치과의사면허증을 스리랑카 정부로부터 발급받아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임시면허증을 얻기 위해 치과대학 졸업증명서, 면허증 그리고 임상경력을 제출했다. 이번 해외진료봉사는 복잡한 서류 절차 때문에 더욱더 긴장되었다.

진료 당일 새벽에 스리랑카에 도착한 진료팀과 그곳에서 개최된 국제 구강암학회에 참석했던 경기도 치위생사협회(경치위)소속 선생님들을 교수님이 진료 현장으로 안내했다. 우리들의 미션은 고산지역 차밭 노동자와 가족들의 간단한 구강검진과 치료, 구강암 예방교육 그리고 잇솔질 교육이었다. 콜롬보 공항에서 진료현장까지 자동차로 5시간 넘는 먼 거리였다. 차창 밖으로 가파른 산등성이 굽이굽이 차밭의 초록색 풍광이 아름답게 펼쳐졌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고산지대 타밀사람들이 사는 마을이었다. 영국 식민지배 시대에 인도 타밀인들이 스리랑카 차밭 노동자로 유입되었다고 했다. 그들은 스리랑카 불교문화에 흡수되지 않고 힌두문화를 가진 소수자로 살고 있었다. 우리를 힌두교 의례(ritual)로 맞이했다. 화환을 목에 걸어주며 이마에 성스런 마킹을 해주었다. 그리고 작업장(강당)에 들어서는 문턱에서 촛불을 밝히는 의례도 있었다. 간단한 의례였지만 우리 안의 영성(spirit)과 dignity(존엄함)를 일깨우는 듯했다.

Peradeniya 치과대학(스리랑카 유일의 치과대학)에서 제공한 차량, 이동치과진료소는 나의 상상력을 초과해 있었다. 오직 하나의 high-speed와 light만 작동되는 unit-chair, suction도 타구도 없었다. 이런 열악한 조건에서 두려움 없이 진료에 임해주었던 아이들과 노동자들이 고마웠다. 몇 차례 단전사태도 있었다. 구강암 진단을 받았다는 2명의 노동자도 이동진료소에 와서 통증을 호소했다. 발치는 할 수 없었고 간단한 조기접촉만 제거해주었다. 새삼스럽지만 치과치료영역이 얼마나 장비에 의존해야 하는 일인지를 절감했다. 반면, 경치위 선생님들의 구강암 예방 시청각 교육, 불소 바니쉬 도포, 잇솔질 교육 등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특히 구강암 예방 관련 부채(brochure)나 스티커(신체 노출부에 붙임) 등은 흥미유발과 교육효과 측면에서 창의력이 뛰어났다. 현장에서 그들의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알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이튿날은 더 높은 고산지대 마을이었다. 이동진료소의 장비 상황과 환자들의 호의적 태도를  알고 난 후라서  나는 첫날의 긴장감을 덜 수 있었다. 중장년 노동자들 검진 시에 발견되었던 심한 치아의 착색과 교합면 마모양상에서 베텔잎/아레카넛 중독 여부를 쉽게 알 수 있었다. 타밀어-한국어 통역자를 통해 ‘그것을 씹으면 않돼…’를 Impact있게 전달해도 혹은 내가 단호한 금지의 손짓과 표정을 지어도 그들은 한결같이 편안하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다시 한 번 예방교육과 계몽이 얼마나 시급하고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 숙소가 있는 캔디 도심은 전형적인 열대기후였으나 고산지대는 우기였고 선선했다. 많은 비가 쏟아진 뒤라서 산허리마다 뿌연 안개가 걸리고 금세 어두워졌다. 교수님이 더 어둡기 전에 내려가야 한다며 진료 마무리를 재촉하셨다.

다음 날은 Peradeniya 치과대학병원을 방문했다. 김 진 교수님 기여로 설립된 구강암연구소도 둘러보았고 우리가 가져간 후원물품(치과 재료) 전달식도 있었다. 치과대학병원 진료실이라지만 이동진료소 상황과 크게 달라 보이진 않았다. 우리는 이런 궁핍함을 어떻게 극복했던가? 성공과 풍요의 광휘 아래서는 선구자(pioneer)의 흔적을 볼 수 없었으리라. 그러나 나는 그곳, 결핍의 장소에서 한 병리학자의 빛나는 발자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들의 미션을 짧은 일정 속에서 수행하고 콜롬보 공항으로 오는 길에 고아원을 방문했다. 쓰나미 재해복구 성금으로 한국 불교계가 건립하고 운영하는 복지재단이었다. 멋진 건축물과 쾌적한 환경 덕택으로 고아원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이들도 깔끔하고 밝은 표정이었다. 원장 스님의 환대를 받고 나서 경치위 선생님들의 불소 예방처치와 잇솔질 교육이 진행되었다. 그들은 원생들과 직원 70여 명을 민첩하고도 유연하게 배치해서 교육하고 처치했다. 치위생사 선생님들의 현장수행 능력에 감동했고 그들이 자랑스러웠다.

사랑은 무지의 열정이라 했던가! 이번 여정은 알 수 없던 세계, 수수께끼 같았던 타자의 얼굴에 손을 내밀고 눈길을 주고 그들의 목소리에 다가가려 했던 시간이었다. 또한 내가 가진 것과 더불어 내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기도 했다. 스리랑카 힐링 캠프에 초대해 주신 김 진 교수님, 신순희 원장님 그리고 경치위 선생님들 한분 한분 모두가 타자에 대한 사랑이라는 무지의 열정으로 나를 이끈 아름다운 Healer들이었다.

송화수 건치신문 전 편집위원

송화수 건치신문 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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