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퇴근을 하니 남편이 저녁 시간에 6세 큰 아들이 한 말을 들려주었다.
아파트 정문에 화요일마다 오는 한방족발을 사서 저녁으로 아이들과 맛있게 먹고 있었는데, 아이가 대뜸 “아빠, 이거 어떻게 만드는 거예요?” 묻더란다. 남편은 정말 맛있나 보네 생각하며 “돼지발을 감초, 계피 같은 한약재를 넣어서 냄새도 없애고 된장도 넣고……”하면서 열심히 설명을 했더랬다. 차분히 설명을 다 듣고 아들 녀석이 하는 말 “아빠… 그럼 돼지는 어떻게 걸어요?” “…….” 그 날 나는 오랜만에 실컷 웃었다. 예상치 못했던 대답에 어린 아들의 천진함에 지금까지 미소 짓게 된다.
아이들은 말하는데 꾸밈이 없다. 상대방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자신이 알고 있는 범위내의 정보를 순서화해서 인과관계를 형성한다. 상대방이 내 말을 듣고 어떻게 생각할까를 미리 짐작하지 않고 자신이 느끼는 대로 솔직하게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경험에 의해서 그런 말하기는 유아기에만 허용된다는 걸 알고 있다. 사람 관계에서 우리는 때로 분위기에 맞게 우회적으로 거절하거나, 자신을 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 과장해서 말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아닌 척하기도 한다. 암묵적으로 공인되는 ‘선의의 거짓말’도 있듯이 어른인 우리는 상황에 맞춰 말을 해야 하고 가끔 말로 자신을 포장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말에 진실함이 담겨 있지 않다면 신뢰를 주기 어렵다. 가까운 사람에게 조차 좋은 말로만 자신을 꾸미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얼마 전에 몸이 많이 안 좋아서 기운 없이 퇴근을 했었다. 아이들의 투정을 받아줄 여력이 없어서 퉁명스럽게 말을 하며 침대에 걸터 앉아버렸다. 5세 딸내미가 쪼르르 뒤따라와서 내 가슴팍에 얼굴을 들이밀며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날 보며 하는 말 “엄마, 사랑받고 싶어?” “아…” 말문이 막혔다.
그런 질문은 생전 처음 들었고, 아이 눈에는 내가 사랑받지 못해서 힘들어 보이는 걸까, 아님 지금 힘드니까 자기가 사랑해준다는 말인가 등 여러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어쨌든 모든 사람은 사랑받기를 원하니까 “응”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두 팔을 벌려 나를 꼬옥 안아주는 것이 아닌가. 몸은 지쳐있었지만 마음만은 정말 따뜻해졌다. 오늘 저녁 남편이나 아내, 부모님, 자녀들, 형제, 자매, 친구의 눈을 보며 “사랑받고 싶어?” 말해 보자. 그리곤 한 번 꼬옥 안아주자. 그동안 내 곁에 있으면서도 감사하지 못했고 때로 말로 상처를 주고 사과하지 못했던 미안함을 그 포옹에 담아 어린아이처럼 진실하게~
박양미 부산대치과병원 구강내과 전공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