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전해준 마지막 교훈

  • 등록 2015.01.13 11:2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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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y Essay-제1994번째

저만치 성큼성큼 앞서가는 바람에 종종걸음으로 부지런히 따라가지 않으면 뒤를 놓치고는 했다. 따라가려고 따라가려고 해도 어린 걸음으로는 좇아갈 수가 없어, 반쯤 울상이 되어 그 등만 좇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아빠는 뒤를 돌아보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두 무리였다. 앞서가는 아빠와 좇아가는 엄마와 언니와 나.

그러던 것이 나이가 들고 내 키가 아빠만큼이나 커졌을 때, 나는 비로소 아빠 옆에서 나란히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래도 남자 보폭인지라, 여전히 내 발은 바쁘게 움직여야 했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등만 바라보며 뒤따르는 일은 없었다.

옆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서 바라본 길은, 아니 아빠의 세계는 뒤따르며 보았던 그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가장 즐거웠던 것은 엄마도 언니도 보지 못한 새로운 길, 새로 생긴 가게며, 새로 피어난 꽃들을 가장 먼저 보고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럴때면 들떠서 재잘거리기에 바빴고, 때로는 뒤따라오는 엄마에게 달려가 앞에 어떤 새로운 가게가 생겼는지, 얼마나 화사한 꽃들이 피어있는지 얘기 해주고는 했다.

물론, 난감한 상황에 처하는 적도 있었다. 두 갈래길, 세 갈래길, 또는 모르는 길이 나올 때면 엄마와 언니가 도착하기 전에 먼저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도 없고, GPS가 발달하지 않았던 때라 선택은 늘 어려운 것이었다. 그럴 때면 나는 가만히 아빠를 올라다보며 아빠가 어떤 선택을 할지 숨죽여 기다렸다.

미간에 자리한 아빠의 주름을 보며 덩달아 심각해져 있노라면, 어느새 아빠는 길을 정하고 다시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물론, 옳은 선택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때도 있었고, 어떤 때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 일도 생겼다. 그래도 언제나 앞장은 아빠 몫이었고, 투덜거리는 일은 있었어도, 가족들은 늘 아빠 뒤를 따랐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아빠를 앞서 걷던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아빠가 뒤쳐지기 시작한 것이.
그렇지 않아도 나이들어 지쳐있던 몸이 병마에 시달리며 더욱 더 약해지고 볼품없어졌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걷는 속도가 느려졌다. 그리고 어느새 손에 지팡이가 들려있지 않으면, 누군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걷기가 힘들어졌고, 그 즈음 병원과 집을 오가는 것을 빼면 밖을 나서는 일이 없게 되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던 그 길도 추억이 되면서, 함께 외출하는 일은 더더욱 드물어졌고, 하물며, 걷는 일은 생각할 수도 없게 되었다. 설령 나갈 일이 있어도 이제는 자동차가 발을 대신했고, 아빠의 자리도 운전석이 아니라 뒷자리로 밀려나게 되었다. 앞서가는, 또는 앞자리에 앉은 딸의  뒷모습을 보며 아빠는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늦은 봄, 마지막 산책길은 어렵사리 이루어졌다. 답답해 기어이  산책을 가겠다는 아빠를 따라 마지못해 나선 길이었다. 물론, 산책은 길지 않았다. 겨우 아파트 단지 초입의 벤치까지가 전부였으니.
앙상해진 아빠의 팔을 붙들고 느릿느릿 아빠의 보폭에 맞춰 걸음을 옮겼다. 내 평생 그렇게 느리고 답답한 산책이 또 있었을까, 자꾸만 앞서가려는 발을 묶어놓는라 애를 먹어야 했다. 빠르게 걷는 것보다 느리게 걷는 게 더 힘들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때로는 걷다가 잠시 멈춰야 했다. 아빠가 숨을 고르고 다리가 다시 기운을 차릴 때까지 기다려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멈춰 서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불현듯 옛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 아빠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을 때의… 새로운 길을 보고 새로운 풍경을 먼저 만나며 느꼈던 그 설레임이 되살아났다.

잠깐 멈춰서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전에 보지 못했던 놀이터 정자의 벗겨진 칠이 눈에 들어오고, 전에 보지 못했던 은행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경비 아저씨가 저렇게 뚱뚱했었던가 새삼 깨닫게 되고, 우리 아파트에 저렇게 어린 꼬마들이 살고 있었나 처음 알게 되었다.

허리를 펴느라 고개를 드는 아빠의 시선을 따라 바라본 하늘은 그 동안 내가 외면해오고, 바쁘다는 핑계로 무시해오던 바로 그 파란 하늘이다. 다시 걸음을 옮기면서는 내 오른쪽 팔에 실린 아빠의 무게가 느껴졌다. 그리고 체온이 전해져 왔다. 벤치에 앉아서는 함께 귀를 열고 새 소리를 들었다. 물론, 참새 몇 마리가 다였지만 말이다.

수십번, 수백번씩 지나다녔던 그 길을 그렇게 정성들여 바라본 것은 처음이었다. 빠르게 걸을 때는 볼 수 없었던 것들. 멈춰서지 않으면 결코 만날 수 없었던 풍경들. 그리고 보폭을 맞춰 함께 느려지지 않으면 결코 느낄 수 없었을 따스한 체온.

마지막 산책길, 아빠는 그렇게 얘기하고 떠났다. 뒤따라 걷는 것도, 먼저 길을 걷는 것도, 앞서 걷는 것도 이제 다 해봤으니, 이제는 느려지라고. 이제 걷다가 잠깐씩 멈춰서 세상을 둘러보라고. 이제 가끔 허리를 펴고, 어깨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보라고. 그렇게 또 한번, 다른 풍경과 세상을 마주해보라고.

이제 벤치에 혼자 앉아 새 소리를 듣는다. 물론 여전히 참새 몇 마리가 다지만 말이다.

그리고 문득 또 다시 추억에 잠긴다. 너무 어려서 걸어서는 아빠를 좇아갈 수 없었을 그때… 기다려라, 같이 가자 소리쳐도 아빠는 절대 뒤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 신호등 앞이라거나 골목길 입구라던가, 갈림길 앞에 서서 아빠는 잠깐씩 멈춰 서 있고는 했다. 나는 아빠가 힘들어서 잠깐 쉬어가나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좇아갈 수 있도록 잘 볼 수 있는 곳에, 좇아갈 수 있을 만한 거리에 그렇게 멈춰서서 딸아이가 좇아올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던 게 아닌가 싶다. 아빠는 예전에도 그랬고, 나이들고 병들어 약해지는 그 순간까지 어른이었고, 결국 아빠였던 것이다.

이주선 휴네스 실장

이주선 휴네스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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