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죠?”--Zeze (소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중)

  • 등록 2015.01.16 13:5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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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y Essay 제1995번째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배웁니다.
검정 사인펜으로.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방법을

매일같이 채널을 켜면, 오늘의 비극이 들려온다.
그것은 누군가 ‘죽었거나’, 혹은 누가 ‘살았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오늘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폭탄테러로 4명이 숨지고…”에서
짧게 채널을 돌리고

“그런데 박명수 씨는 무슨생각으로 치킨집을 차렸던…”에서
폭소한다.

-75세 할머니. 자택에서 숨진 채 4일 만에 발견- 이라는 뉴스에서
손가락을 돌려 다른 창을 넘기고

-여배우 A양. 시상식에서 섹시미 화끈- 이라는 뉴스에서
손가락을 눌러 클릭한다.

언제나 새로운 채널. 새로운 창으로
마우스의 한 클릭과, 스마트 폰의 한 손짓으로 변하는 세상.

그 짧은 순간에

비극이 희극이 되고
희극은 비극이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더 이상
무엇이 비극인지 눈치 채지 못한다.

서민들이 불을 지르고, 함성을 지르고 울음을 터트리는 동안
오직 경찰들만이 묵묵히 지켜보고 있을 때,

배우들은 오직 멋쩍은 웃음과, 드레스와, 스크린쿼터로
온갖 카메라와 함성을 지켜볼 수 있게 된다.

이런 속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무엇이 비극이며,
무엇이 희극인지 모르게 되어버렸다.

한 클릭과 손짓으로 변화하는 세상과, 그 사람들 속에서
아이들은 더 이상

극이 비극인 지점에서, 울지 못하고
극이 희극인 지점에서, 웃지 못한 채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자신에게 요구하는 미디어와 책상만을 응시하기에
아이들은 세상이라는 무대를 보지도 못하고
참여하지도 못하는 바보관객이 된다.

그리고 그 아이는 어른이 되어간다

세상이라는 무대를 바라보는 순간.
채찍같이 내려오는 현실.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1등, 1%, 100점, 1등급…
자신의 나타내는 숫자들이 쏟아지는 현실.

수많은 숫자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매트릭스’와 같은 현실 속에서

언젠가 ‘네오’가 나타나 이 세상을 깨워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관객들.

무대의 해피엔딩 보다,
자신의 해피엔딩을 원하는 관객들에게

‘모두에게 해피엔딩을’이라는 소설은 허구 일 뿐 이다.

그 관객들은, 이제는
스스로 응시하지 못하고
스스로 사고하지 못하고
꿈꾸지 못하는
장애를 지닌 아이들은 장애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단지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걷지 못하는 아이들 만에게,
‘장애우’라는 이름을 가지게 만든다.

머리의 장애와 가슴의 장애 중 무엇이,
이 세상에 “장애”가 되는지를 알지 못하는 세상 속 에서

아이는 배우게 된다.

어떻게 하면
비극에 좀 더 빨리 순응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철이 든 어른이 될 수 있는가에 관해 배우게 된다.


강민수 부산대치과병원 구강악안면외과 전공의

강민수 전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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