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버지다

  • 등록 2015.02.03 11: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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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y Essay 제2000번째

한밤중이나 새벽녘에 휴대폰 문자가 오면 불안합니다. 십중팔구는 부고 알림이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에는 부모상을 주로 알려주더니, 요즘 들어서는 본인 상도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낮에 오는 문자 중에서는 친구들 자식 결혼식 청첩도 이제 자주 보입니다. 원치는 않았지만,  아버지 세대는 물러가고 우리들의 세대가 왔습니다.

아버지와 함께한 추억 중에서는 유쾌한 기억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자상한 아버지이기 보다는 엄한 아버지 상이 요구되던, 그리고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에 우리는 스스로 컸어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귀가하시기 전까지는 잠이 들어서도 안 되고, 아버지가 숟가락을 드시기 전까지는 식사를 해서는 안 되는 불문율 속에서 아버지는 가장 든든하고 존경하는 대상이었습니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여행도 같이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학원도 데려다 주며 친한 척했지만, 이제 다 성장한 아이들은 퇴근한 나를 보고 데면데면 대합니다.
내가 식탁에 앉기도 전에 먼저 식사를 하고 바쁘다며 일어섭니다. 긴한 일로 문자를 보냈지만, 수신확인만 하고 답장은 없습니다. 세월이 더 흐른 뒤 아이들에게 저는 어떤 아빠로 기억될까요?

족보를 펼쳐봅니다. 족보에는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보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누군가의 아들로 기억되기를 바랄까요? 아니면 내가 아무개 아들의 아버지로 기억되어야 할까요?
페이스북을 열면 지난여름에 유명을 달리한 후배 얼굴이 나타나서 친구 맺자고 합니다. 후배는 어린 남매를 남겨 놓고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상적으로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아빠와 어느 날 갑자기 빈자리가 된 아빠의 자리는 얼마나 큰 차이로 남매에게 슬픔을 주었을까요. 생각하면 제 가슴이 미어집니다.

저에게는 아직 아버지가 계셔주어서 얼마나 감사한 지 모릅니다. 기력이 쇠하시고 기억도 약해지셔서 머지않아 아버지를 놓아드려야 하겠지만, 생로병사가 명확한 것이라 많이 슬퍼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세대가 가고 그 세대를 짊어져야 한다는 게 마음이 무겁지만, 또 다른 세대를 위해서 오늘도 묵묵히 일하는 50대 가장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오랜만에 밥상에 놓인 갈치구이를 맛있게 먹었는데 아들 줄 거 다 먹었다고 아내가 구박해도, 내 생일에 축하 전화 한 통 없는 자식이 야속해도, 후배가 설명하는 기구와 술식이 너무나 낯설어도, 어쨌든 우리는 세상을 이끌고 간 아버지의 아들이고 세상을 이끌고 갈 아들들의 아버지입니다.
대한민국 아버지들 파이팅!

이충규 치협 군무이사

이충규 치협 군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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