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를 짝사랑한 남자

  • 등록 2015.03.06 09:2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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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y Essay 제2008번째

초등학교 5학년, 학예회에서 연극을 성공적으로 선보인 기념으로 같이 무대에 섰던 친구들과 동네 중국집에서 탕수육을 배터지게 먹었고 담임선생님께서 주신 돈으로 저녁 값을 계산하자 동전이 서넛 남았다. 대장격인 녀석이 “줍는 사람이 임자!” 하고 동전을 허공으로 던진 바로 그 순간, 치과와 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백 원, 그게 뭐라고 땅에 구르던 그것을 차지하겠다는 탐욕의 ‘발’은 이성의 끈을 잡기 전 먼저 뻗어 나갔고, 그에 걸려 친구 현정이가 넘어졌다. 그런데 아뿔싸! 울음을 터트리며 일어난 친구의 왼쪽 앞니가 반쯤 부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설상가상으로 영구치라 하니, 평생을 친구가 저리 살아야 하는 것인가 오금이 저려왔다. ‘경찰서를 가야하는건가.’ ‘피해보상금도 줘야할텐데 부모님이 날 가만두실까.’ 어린마음에 친구 옆에서 한참을 같이 울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는 여자아이 인생 책임져야하는 것 아니냐는 핀잔 아닌 핀잔을 선생님들께 들으며 동전을 던진 친구와 함께 방과 후 한 달간 매일 반성문을 제출하는 벌을 받았다. 반성문을 써서 부러진 치아가 다시 붙을 수 있다면 천장만장이라도 쓰고 싶었다.

며칠 후, 열과 성을 다해 쓴 반성문에 하늘이 감동하신 것이었을까. 현정이가 아무렇지 않게 멀쩡한 치아로 내 앞에 나타났다. 나중에 부모님을 통해 알게 된 바로는 치과에서 친구의 앞니를 감쪽같이 재건했으며, 부모님께서 그에 따른 합의금과 치료비 명목으로 몇 백만 원을 들여 현정이네 부모님과 합의했다는 것이었다. 진짜 몇 백만 원 이었는지, 부모님께서 다음부턴 조심하라고 겁주는 차원에서 그리 말씀하신지는 아직도 모를 일이지만 그 때 그 어린 마음에 새긴 두 가지를 아직까지 잊을 수 없다. ‘소탐대실’ 이란 사자성어가 그 중 첫째이고, ‘치과의사가 되자’가 둘째였다. 현정이의 인생은 물론이거니와 평생 짊어졌을지 모를 죄책감에서 해방시켜준 ‘치과의사’야 말로 최고의 직업이라 여겨진 까닭이었다. 또한, 친구 아버님들 중에 유독 치과의사 선생님들이 몇 분 계셨었고 간접적으로 느껴온 그 풍요롭고 깔끔한 이미지가 어린 나의 직업관에 영향을 끼쳤다.

지방이긴 했지만 중고교를 선서하며 들어갈 만큼 공부는 어느 정도 열심히 했고, 특목고 대신 의치대 진학이 더 수월하다고 정평 난 일반고에 진학했다. 치열하게 고교 3년을 보냈지만 치전원 제도 도입과 함께 좁아진 문을 탓해야 했을 런지, 치대수시전형에서 아쉽게 고배를 마셨고, 합격통지서를 보내준 의대와 한의대를 뒤로 한 채 결국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입학했다. 공학은 어려운 동시에 매력적인 학문이었지만 그 재미가 아무리 크다한들 사람의 ‘미련’이란 것을 이길 수는 없었다. 입학 이후, 곧 폐지된다는 전문대학원 제도를 알게 되었고, 조바심에 3년 만에 조기 졸업하여 치전원 제도 막차를 탈 수 있었다.   

“왜 치대를 선택했니?” 그리 간절히 입학한 치과대학이었지만 떨어질 주식을 너무 비쌀 때 산 후배를 가여워 하시는 선배님들의 물음에 멋쩍은 웃음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 좁디좁은 반도 땅, 경제성장 전 세대와 비교할만한 직업군이 대체 어디 있으랴. 아프면 환자인데,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규정지어버리는 기성세대의 문구에 조차 저항은커녕 ‘나만 힘든 거 아니지?’ 위로받고 있는 것이 나를 포함한 요즈음 젊은세대의 숙명이다. 이처럼 치과가 ‘암울하다’ ‘어둡다’ ‘깊이가 얕다’는 말로 아무리 나를 밀어내려하지만, 지금 배우고 있는 이것이 손끝에서 발현하여 환자의 질병을 덜어줄 수 있는 인술이 될 것이라 생각하면 이만큼 매력적인 것이 또 없다. 처음 가졌던 그 마음가짐으로 매출이 휘청하고, 멱살 좀 크게 잡혀도 팅기는 맛이 보통이 아니구나 여기며 가끔 미운 아내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끝까지 내 직업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자부심 넘치는 치의가 되리라 다짐해 본다. 

최한울 연세치대 본과 3학년

최한울 연세치대 본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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