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보 운 전

  • 등록 2015.03.24 16: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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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y Essay 제2013번째

‘저도 제가 무서워요’, ‘직진만 이틀째’, ‘먼저가…난 이미 틀렸어…’ 요즘 길거리에 나서면 초보운자들을 알리는 재미난 문구가 눈에 많이 뜨입니다. 초보운전자들이 웃기는 그림과 함께 재미난 문구로 애교작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초보운전이지만 초보운전 문구를 아예 붙이지 않고 운전하는 운전자들도 있습니다. 오히려 초보운전 문구를 보면 무시하거나 경적을 울려대는 느낌을 받는다는 겁니다.

실제로 얼마 전 시어머님께서 뒤늦게 운전면허를 따셨습니다. 남편과 저는 어머님 운전 연습을 위해 주말 오후 도로로 나섰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앞좌석에 함께 앉은 남편은 ‘엄마, 브레이크! 브레이크!’를 연신 외쳐댔습니다. 아무래도 뒤늦게 시작한 운전이 영 수월치 않으셨던 겁니다. 그렇게 옆 차선으로 끼어들지 못해 좌회전을 못하고 직진과 우회전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식은땀을 흘리시며 운전하기가 쉽지 않다며 힘들어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도 그럴 것이 초보운전 문구를 붙이고 있었음에도 도로에서 좌측 깜빡이에 양보가 참 인색했습니다. 깜빡이를 켜면, 켜자마자 끼어 들새라 뒷 차는 속도를 내며 위협했고 결국 직진만 했었던 겁니다. 물론 그날따라 운이 좋지 않아서였겠지만 속도 느린 초보운전자의 차는 한 번도 양보 받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요즘 운전자들은 무엇이 그리 바쁜지 5분 더 일찍 도착하는 것, 한 차라도 더 제쳐서 빨리 가는 것이 운전을 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사실 저도 운전이 손에 익을 때쯤부터는 빨리 가는 것이 운전을 잘 하는 것이라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부끄럽게도 끼어드는 차량이 있으면 절대 끼워주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옆 차선에 공간이 보이면 바로 차선을 변경하고 그렇게 5분 일찍 도착하는 것에 만족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운전하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었습니다. 항상 바짝 긴장을 세우고 있어야 했고 아슬아슬했던 상황도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출근길, 차선이 하나 줄어들어 3차선의 차들이 2차선으로 합류하는 교차로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다들 월요일 출근길이라 마음이 바쁜지 3차선의 차 한 대가 내 앞으로 깜빡이도 켜지 않은 채 다가오며 끼어들려고 하였습니다. 괘씸하게 생각했던 저는 ‘빵-’ 하고 경적을 울리고 비켜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 차는 그 후로 저를 쫓아와 기어이 제 앞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아 복수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급브레이크에 너무 놀랐고, 속으로 ‘참 어이가 없고 무서운 사람이구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출발하며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바쁘게 요리조리 차선을 바꾸어가며 나아가는 차들도 있었지만 적정속도로 양보해가며 여유롭게 운전하는 차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한번 양보해주는 것이 무엇이 그리 어려워 경적을 울려댔는지, 급브레이크를 밟아 복수해왔던 운전자와 내가 결국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부끄러워졌습니다.

그 후로는 비켜주면 손해, 내가 더 먼저 가야지 라는 생각을 바꾸어 출근길에 깜빡이를 켜는 차에게 양보를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한 번씩 앞차에서는 비상깜빡이를 켜며 고맙다는 신호를 해 왔습니다. 그리고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에서 건널 타이밍을 찾으며 서있는 교복 입은 학생들이 있을 때면 정차해 학생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려 줍니다. 양보 한번 했을 뿐인데 아침 출근길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기분이 여유로워졌습니다.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하는 방법을 배운 날이었습니다.

하민희 부산대치과병원 치주과 전공의



하민희 부산대치과병원 치주과 전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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