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로 산다는 것

  • 등록 2015.04.17 13:30:14
크게보기

Relay Essay 제2020번째

한 달에 한번 씩 찾아 가는 모교의 원내생들이 일반 환자에게 임상실습을 하는 일차 진료실에 앉아 외래교수실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바깥 풍경을 보면서 30여 년 전의 나를 생각해본다.

나만의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그 때는 참 대학 생활을 여유롭고 즐겁게 한 것 같았다. 친구들과 문학토론 서클도 만들어 활동하면서 여행도 많이 하고 즐겁게 보냈었는데 지금의 후배들도 그런 여유를 가지면서 지내고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가끔 동료들과의 모임에 나가보면 여기저기서 나오는 소리가 치과의사 하기 힘들다는 소리다. 물론 20여 년 전의 개업 현실과 지금의 치과들의 상황은 많이 달라져 있다. 늘어나는 치과의사들로 개업 자리도 마땅치 않아 서로들 다투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한 배를 탄 동료들인데….
그 현실을 인정하고 조금씩은 양보하면서 상대가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부대끼며 현실을 헤쳐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얼마 전에도 후배 한 명의 안 좋은 소식을 듣고서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치 못 했다. 하지만 그 것도 우리네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여야하는 숙명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도 이제는 치과의사로서는 말기에 접어들고 있는 것 같다. 눈도 침침해 안경에 의지해야 하고 세미나도 들으러 가는 게 멋쩍어져서 내 나이 또래들도 와있는지 확인해 보려고 한번 씩 뒤돌아본다.

가끔 만나는 선후배들은 어떻게 그렇게 바쁘게 사느냐고, 치과는 언제 하느냐고, 나에게 질문들을 한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한테 우스갯소리로 치과는 취미로 한다고 답해 준다. 어쩌면 나는 스트레스를 남들과 다르게 푸는 것 같다. 사실 그랬다. 개업 초기부터 마누라랑 티격태격 하면서도 되도록 진료시간을 줄이고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해 왔다. 그래서 가진 것은 별로 없지만 마음만은 아직 부자인 것 같다. 다행히 자식들이 외국 타령 안하고, 마누라가 강남 병이 없어서 작은 도시에서 생활하니 큰돈이 안 들어가서 뭐 그럭저럭 살아온 것 같다. 환자에게도 스트레스 안 받으려고 내 편한 환자만 보면서 갑질(?)하다 보니 통장도 항상 마이너스이다. 하지만 난 항상 즐거운 마음이다. 아니 억지로 즐거운 마음이 생기도록 주변 환경을 만든다.

그래서 마누라랑 즐거운 마음으로 ‘덴티스트’란 잡지에 요리원고도 보내보고, 그 원고 보내려고 사진을 찍다 보니 사진 찍는 것이 즐거워서 사진작가에도 도전해 보고,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러 다니다 보니 문학관들이 보여서 문학기행을 하게 되고, 사진작가가 되니 다른 사람들도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아서 사진 동호회를 만들게 됐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16년 전 경기도치과의사회에 공보이사를 시작으로 지금껏 이 직책 저 직책 맡아오면서 지금도 회무에 참여하고 있다. 난 그게 즐겁다. 회원들에게 봉사한다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나 자신이 다듬어지는 시간인 것 같아 즐겁다.

얼마 전에는 능력은 없지만 치과의사들이 투자해 만든 합금 회사의 임원으로 활동하다가 대표이사로 추대 받게 되었다. 나에게도 그럴 기회가 올 때 맡은 바 직책을 잘 수행해야 된다는 생각에 4~5년 전에 모 대학 경영대학원의 C. F. O. 과정을 수료 받았다. 우스갯소리지만 면접하던 교수가 하는 말이 ‘치과의사가 왜 회사를 경영하는 재무전략가들이나 하는 과정을 들으러 왔냐?’고 해서 자초지종을 말하니 좋게 받아들여서 다니게 되었는데 지금도 그 교수를 가끔 만나면 하는 말이 내가 의사로서는 유일무이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렇듯 30여년이 다 되는 세월을 그저 진료실에만 앉아서 치과의사로 보냈다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녹다운 됐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가끔은 지치기 전에 동료나 가족들하고 여행도 하고, 진료실을 벗어나 나만의 시간을 가져 보면 좋을 것이라는 제안을 해 본다. 비록 통장에는 마이너스가 기록되어 있을 지라도 마음이 풍요로워지면 언젠가는 통장도 채워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러면 더 진료실이 그리워지고 환자들을 즐겁게 생각하고 맞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박일윤 경기지부 대의원총회 의장

박일윤 경기지부 대의원총회 의장
Copyright @2013 치의신보 Corp. All rights reserved.



주소 : 서울시 성동구 광나루로 257(송정동) 대한치과의사협회 회관 3층 | 등록번호 : 서울, 아52234 | 등록일자 : 2019.03.25 | 발행인 박태근 | 편집인 이석초 대표전화 : 02-2024-9200 | FAX : 02-468-4653 | 편집국 02-2024-9210 | 광고관리국 02-2024-9290 | Copyright © 치의신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