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을 돌며 페이닥터도 하고, 대진의도 하고, 검진의도 하고, 종병과장도 했다. 최근 4개월간 선배님들, 동기들과 함께 신규 개원자리를 겨우 찾았다. 병원 인테리어 하면서 가구를 골라야 하는데, 사실 나는 가구가 싫다. 이사를 너무 많이 다녀서다. 광주, 대전, 강남, 동작, 안산, 수원. 같은 동네, 심지어 같은 건물 내에서도 이사를 해봤다. 월세, 전세, 자가, 기숙사, 사택, 단독주택, 다세대, 다가구, 오피스텔, 아파트, 주상복합 안 살아본 방식이 없다.
가구는 뭔가 무거워서 무섭다. 가구 발이 내 발등을 찍고, 모서리가 옆구리를 찌를 것만 같다. 포장이사 같은 거 하면 좋은데, 학생 때 이사를 다니고, 신입일 때 다니니까 몸으로 나르고, 좁은 공간에 뭐 들어가지도 않고, 어떤 교직원들이 대학 기숙사의 공간에도 맞지 않는 가구들을 계약해버린 바람에 문도 제대로 안 열리는 학교 기숙사에 살아서. 기숙사도 학기 때마다 방을 옮기라는 통에 새 학기의 시작은 땀으로 얼룩지고 아름답지 못했다. 수험생이라고 촘촘하게 3면을 막아버린 독서실에 사람을 강제 수용시키질 않나. 고등학교때, 대학때, 국시때.
이사하기 귀찮으면 버리고 가도 되고, 엘리베이터 없고, 바퀴가 없어도 다른 사람 도움 없이 혼자 나를 수 있는 가벼운 조립식, 이동식 가구 같은 게 좋다. 고향 집도 부모님이 너무 무겁고 큰 가구만 자꾸 사시고, 에어컨도 없이 사시고, 뭐든 좀 불편해서 싫다. 이미 성공하신 어느 선배님들도 왜 그렇게 불편한 진료실에서 사시는지 모르겠다. 키보드에 때 끼고, 마우스 선은 짧고 고장 나서 버튼이 잘 눌리지도 않는데. 요즘은 반대로 업자들의 과도한 인테리어비용이 문제인 듯하지만. 나는 꽉 끼는 옷도 못 입는다. 무슨 핏(fit)을 맞춘다며 관절도 안 접히는 옷을 어떻게 입고 다니는 건지.
게릴라전을 치르며 살아온 건지. 알카에다인 듯. 자전거도 트렁크에 들어가는 접이식 아니면 안 된다. CRT 모니터 없어져 얼마나 다행인지. 요즘은 엔도엔진, 레진 큐어링 기구들도 작고 무선이다. 다리에 걸리지 않게 체어에 설치할 PC도 스마트폰 크기로 했다. 내 손으로 밀어서 쉽게 움직일 수 없는 물건이 내 공간에 존재하는 게 너무 싫다. 예전에 한 번 이사 할 때, 작은아버지께서 TV 하나 선물로 주신다고 했는데, 제발 안 주셨으면 했다. 움직일 수 없는 거대한 금속덩어리 하나를 내 집에 들여놓기 싫어서다. 우리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께서는 전공이 토목이라 뭐든 묵직하고 튼튼한 걸 좋아하시는 듯하다.
병원 대기실에도 큰 TV 같은 건 두지 않기로 했다. 프런트에 무거운 대리석도 없고, 묵직한 테이블도 없다. 책상, 의자도 주말에 직원들과 가서 사 와서 직접 조립할 수 있는 최소한으로 하기로 했다. 개원식 화분, 화환 선물도 없었으면 좋겠고, 그냥 얼마 안 되지만 빈 공간에서 쉽게 걸어 다녔으면 좋겠다.
커피 맛은 보리차든, 사약 맛이든, 뭐든 상관없고, 그냥 어디 조용하고 의자 포근한 카페가 좋다. 그리고 예쁘고 화려하고 경이롭고 신비롭고 웅장한 것보다 편한게 언제나 먼저다. 동네 강아지처럼 깽깽거리고 끙끙거리며 저항하며 내 맘대로 살고 싶다. 무겁지 않게 가볍게 살고 싶다.
주현성 카이스트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