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되면 굉장한 어른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중, 고등학교 학창시절에는 스무 살이 되면 자유를 만끽하며 꽃다운 20대를 보낼 줄 알았다. 스무 살이 되고,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여전히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취업에 대한 걱정으로, 스펙과 학점에 대한 준비로 20대 초반을 보냈다. 취업, 입학 등의 수많은 경쟁의 회오리를 지나 보내면 바래왔던 자유와 행복이 있을 줄 알았다.
‘송지은’이라는 가수가 부르는 노래 제목처럼 ‘예쁜 나이 25살’에 치전원에 입학한 후 또 다른 치열한 경쟁과 수많은 시험 관문을 매번 통과하고 보니 벌써 29살… 내가 상상했던 서른 즈음의 나는 10대, 20대 때의 나와는 다른 훌쩍 성장한 멋진 ‘어른’의 모습이었지만, 현실은 눈앞의 과제와 시험들을 힘겹게 헤쳐 나와 지치고 상처투성이인 ‘어린 아이’의 모습이었다. 자유와 남들이 말하는 행복을 여전히 원하지만, 그건 또 다른 나의 10년 뒤 모습일 뿐이었다. 그래도 25살에는 꿈을 위해 열심히 나아가는 나를 응원하며 나의 행복은 5년 쯤 뒤로 미루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때의 생활과 여전히 변한 것이 없다. 뒤를 돌아볼 여유도 주어지지 않는 일상에서 앞만 보고 달려온 나를 한번이라도 잘하고 있다고 토닥거려 줄 시간도 여유도 없는 지금, 내가 그토록 바랐던 자유와 행복은 마치 닿을 수 없는 ‘꿈’이 되어버린 것도 같다.
서른 살에 이루고 싶었던 내 인생의 과제들은 또 다시 5년 뒤로 미뤄졌고, 지금 나는, ‘서른’이라는 옷을 어색하게 입고 있는 세상 물정모르는 꿈 많은 25살과 같다.
언젠가부터 그토록 원했지만, 그토록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살고 있는 나는 괜히 SNS에서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살고 있는 누군가를 오늘도 어제도 끊임없이 부러워하고 있다. SBS에서 방영한 ‘달콤한 나의 인생’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봤었다.
다른 직업과 다른 일상을 보내고 있는 서른 즈음의 4명의 여성 출연자들의 고된 하루와 비슷한 고민들을 다룬 방송이었는데, 그 중 29살의 로스쿨 1회 졸업생 변호사인 출연자의 하루 일과는 꼭 지금의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매회 폭풍 공감하며 봤던 기억이 있다.
여자 치과의사가 가지는 원하는 커리어를 가지기 위해서 서른 살의 여자는 버리고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낀 한 순간이었다. 지금보다 5살만 어리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서른 된 순간부터 한 번씩 하게 되는데, 그건 어떻게 보면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노력했던 수많은 시간들을 무시하는 이기적인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지금 내가 ‘서른’이기 때문에 지금의 나의 모습을, 나의 수많은 힘든 고민의 시간들을 반영하는 생각이기도 하다.
아직,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는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나도 많지만, 허락되지 않는 현재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하다. 요즘은 늦은 나이에 새로운 꿈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늦은 나이에 치전원에 입학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다. 치전원에 입학하게 되면 사실 그들이 꿈꾸는 ‘꿈’에 다다른 것 같지만, 사실 다다른 건 여전히 험난한 ‘현실’이라는 걸 나뿐만 아니라 다들 느끼고 있는 심정일 것이다.
요즘엔 회사에서 정말 잘나가는 ‘골드 미스’ 여성들도 많은 걸로 아는데, 그들 역시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선택한 현실에서 마주치는 인생의 ‘과제’들 앞에서 어찌 고민이 없었을까. 현대 여성들의 의식과 지식,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어쩌면 점점 고립되어 외로워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온다. 내가 늘 마음 한 켠에 담아둔 나의 꿈. 생각만 해도 흥분되는 그 꿈은 어쩌면 또 다시 5년 뒤로 미뤄질 지도 모른다. 그 꿈을 이룬 내 모습이 너무 늙었으면 어쩌나 걱정도 된다. 내 나이 서른 다섯에는 꿈 같은 일을 즐기는 자유와 행복이 있을까. 기대해 본다.
이주경 부산대치과병원 보존과 전공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