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호와 KTX

  • 등록 2015.05.27 11: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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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y Essay 제2030번째

어쩌다가 TJB 대전방송의 “문화를 생활화 합시다”라는 공익 캠페인에 출연했더니, 가끔 처음 보는 분에게 인사를 받는다. 불과 10여초쯤의 노출인데 미디어의 위력은 과연 놀랍다.

그림의 배경은 대전시립미술관 로비, 고 백남준씨의 비디오 작품 ‘프랙톨(fractal) 거북선’ 이다. 예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고등 사기죠”라던 고인의 ‘고등’화술(話術)에 넘어가지 말라. 작품은 초당 대여섯 번 동영상이 바뀌는 4백여 대의 TV 모니터와, 수족관과 박제 거북이 등 백여 개의 오브제로 구성되어, 3,5 x 4 x 6,7m의 크기만으로도 보는 이를 압도한다. 1993년 대전 엑스포 당시 제작되었고, 시대현상을 표현함은 물론, 날개형상을 한 거북선의 노가 미래로 비상하는 진취적인 기상을 뽐낸다. 다만 전시공간이 좁아 화면 배치나 오브제의 예술적인 퍼스펙티브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음은 유감이다. 언젠가 넓은 배경을 거느린 활짝 열린 새 항구를 찾아가기 바란다. 현대문명의 배설물들을 마구 쌓아놓은 듯 불규칙한 형태 속에서 ‘시대정신’을 읽으려는 시도를, 혼돈(chaos) 속에서 어떤 로직을 찾아내려는 사색에 은유하여, 프랙톨이라는 제목을 붙였을 터이다.

20년 전 치의신보에 “프랙톨과 직선제”라는 제목으로 직선제에 반대하는 글을 쓴 바 있다(1995. 3. 18). 민주주의가 싹 튼 그리스의 도시국가에서나 가능했던 직접민주주의가, 국가 규모의 팽창과 교육수준 향상 및 직업·사회의 전문화를 거쳐, 간접민주주의·대의정치로 정착된 것이 현대 선진국에서 보는 역사의 흐름이다.

더욱이 협회의 구성원들은 고학력 전문직이 아닌가? 기초 단위에서 점차 더 큰 차원으로 융합하고 격상되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하여‘프랙톨’이라는 어휘를 빌린 것이다.  다시 말해서 회무의 업그레이드에는, 반(班) 모임이나 구(區)회에서 시작하여 지부에서 대의원을 제대로 선출하는 회무참여의식이 중요한 것이지, 협회장 직선제가 정답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더구나 한번 선출하면 되돌리기 힘든 직선제 보다, 회무 경험으로 임기 내내 감시와 견제가 가능하고 탄핵(불신임 결의)권을 가지고 있는 대의원총회가 선출하는 편이, 장점이 훨씬 더 많다는 의미다. 

직선제는 실무보다는 전 구성원이 존경하는 구심점이 될 인물을 선출하거나(내각제 하의 대통령), 국민투표에 필적하는 범국민적 합의를 요할 때, 또는 왜곡과 부정이 누적되어 혁명적인 대전환이 필요한 경우에 적합하다.  상식적인 절차로는 이길 수 없다는 계산 끝에 택한 직선제라면, 선거가 인기영합주의(populism)로 무장한 선동가(demagogue)의 각축장으로 변하여, 명주 고르려다가 베 고를 우려가 크다.

지난 해 의사협회 보선에서는 10만 회원 중 1만 448명이 투표, 추무진 후보가 회원 대비 5%인 5106표로 당선되었다. 금년 3월에는 다행스럽게도 2.4% 늘어난 7.4% 득표로 재신임을 받았다. 이것이 직선제가 뒷받침한다는 힘 있는 집행부인가?

우리 협회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선거인단 투표(2014. 4. 26)는 총인원 1481명 중 980 즉 66.2%가 참여하였다. 늦어진 결선투표에도 대부분 지방에서 올라온 선거인단 785명이 남아 53%를 유지해 주었다. 고마운 일이다. 금년 64차 의총에서 직선제 개정안이 부결된 것도 다행스럽다. 20년 전 칼럼의 마지막 구절을 다시 올린다.

“직선제를 하면 모든 게 나아지리라는 생각은 너무나 막연하고 추상적이다. 아무래도 새마을호 세워둔 채 나귀타고 한양가자는 얘기로만 들린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으니 문장을 조금 손질하자. 단어 하나, 새마을호를 KTX로 바꾸면 된다.
 임철중 대전문화재단 이사

임철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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